한 주는 동시, 한 주는 시. 이런 호흡이었어요. ‘동시동심’이 게재되는 금요일은 ‘시 한 송이’가 쉬는 금요일이었지요. 그런 금요일 아침에 저는 동시동심을 읽었지요. 천진의 깊이를 알게 되는 기쁨이 컸어요. 천진은 ‘참되고 꾸밈없음’에 이르기 이고, 천진한 눈과 손을 가진 존재만이 천진 속으로 점점 더 들어갈 수 있지요.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쓰시는 글과 사진의 모습으로 김이구 선생님의 천진을 느끼고 있었어요. 강물의 풍경처럼, 한번은 인사드릴 시간이 있겠다 여기고 있었습니다.
희미한 낮달은 여주 강물쯤에서 환한 저녁달이 됩니다. 경을 읽던 늙은 비구는 돌에 새긴 비문 속으로 돌아갔어요. 이승과의 이별로 읽을 수도 있어요. 잠긴 돌은 읽을 수 없게 된 돌이어서, 흐르는 강물이라 해도 그것을 열 수는 없어요. 이 강에서 하루쯤 더 가면 절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부도(浮屠)를 만날 수 있는데, 맑은 어둠살 속에서 사라지는 경계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승에서는 하루를 더 가는 방법을 모르고 강물은 여전히 흐릅니다.
평생 편집자였고, 아동문학평론가였고, 소설가였고, 먼저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 노동시인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벗을 기려온 분입니다. 김이구 선생님께서 가장 가까이 쓰신 ‘동시동심’은 “늙은 호박”입니다. ‘늙음’은 ‘잘 익음’이라는 뜻이라고 쓰셨지요.
천진(天眞). 하늘이 다다른 곳.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자리입니다. “내 끝내 얻지 못한 강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대 모습을”. 박영근 시인의 목소리에 겹쳐 읽으셨을 선생님의 목소리에, 오늘은 우리가, 겹쳐 읽는 시간입니다. 스며들어 강물을 이룰 거예요.
김이구 선생님. 환한 곳에서 편히 쉬세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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