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당국이 서울 서초구 노른자위 땅을 매각한 토지주들에게 수백 억대 세금을 탕감해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본보 8일자 10면), 이 과정에서 수십 억대 로비가 있었다는 취지의 녹취록이 나왔다.
8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파일은 지난해 1월21일 녹음된 것으로,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공동 땅 매각대금(386억원) 등을 관리해온 ‘헌인새마을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재정분야 전 간부 A씨와 옛 토지주 B씨 등이 한 음식점에서 만나 주고받은 대화다.
녹취록에서 A씨는 양도소득세 등을 내지 않은 배경에 대해 “그거 면제받기 위해 돈을 다 걷어 한 20억원은 세무사를 통해 썼다”며 “세무사 C씨와 (일을 함께 본) 세무사 D씨는 국세청에 오래 근무하고 세법 같은 책도 낸 사람이다. ○○세무서장과 (친분이) 있다더라. 우리도 국세청 등을 쫓아다니는 등 노력을 엄청했다”고 털어놨다. 이른바 전관을 전략적으로 선임, 로비를 펼쳤다는 얘기다.
녹취록에는 A씨가 “국세청 직원 말로는 많이 봐줬다고 하더라”며 “많이 내야 하는데. (개인소유 토지에 대해) 가산세를 빼주고 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C씨와 D씨는 모두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C씨는 서초세무서 등지서, D씨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등에서 근무하다 지방의 세무서장까지 지냈다.
녹취록에는 전직 국회의원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A씨는 “국회의원했던 E씨는 동네에 와서 양도소득세 면제해야 된다고 다녔다”며 E씨를 여러 차례 거론했다. E씨가 회장을 지냈던 특정단체 회원들을 동원, 서울지방국세청 등에서 시위를 벌인 정황도 나온다. A씨는 “국세청 데모도 엄청 했다. 10번은 갔다”고 말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실제 2015년쯤 여러 차례 상경시위를 했고 경비 등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녹취록과 관련 당시 추진위 관계자는 “세무사 C씨 등에게는 8억,9억원의 수임료를 준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특정단체 회원들의 시위경비 등을 지원하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던 건 맞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세무사 C씨도 “정당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D씨는 “담당공무원들 이름도 잘 몰랐다”며 “수임료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금신고 등은 정상적으로 다 했다”고 해명했다.
세무당국은 2006년쯤 헌인마을 땅 10만여㎡를 3.3㎡당 700만,800만원에 도시개발사업 시행사에 판 토지주 등에게 2015년과 지난해 양도소득세 등 최소 500억,600억대 세금을 감면 또는 면제해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매각 사실을 뒤늦게 안 국세청은 신고ㆍ납부불성실 등의 가산세까지 매기려 했다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 “토지주들이 법률적 지식이나 상식이 부족해 정상적인 납세의무 이행이 어려웠음을 고려한 조치”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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