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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최대주주 예보, 상황 방치 땐 직무유기”
우리은행 경영 불개입 선언 해놓고
1년도 안 돼 입장 바꿀 태세
내부쇄신 명분 “임추위 참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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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안팎서 반대 목소리 높아
“민영화 후퇴 말고 독립성 보장을”
“예금보험공사의 비상임이사는 우리은행장을 선임하는 임원추천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민영화된 우리은행 자율경영에 대한 정부의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겠다.”(지난해 12월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
“단일 주주로는 최대 주주인 예보가 우리은행이 여러 가지로 어지러운 상황에도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어 고심하고 있다.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지난 8일 정부 고위 관계자)
우리은행 경영 불개입을 선언했던 정부가 1년도 안 돼 입장을 바꿀 태세여서 첫 발을 겨우 뗀 우리은행의 민영화가 자칫 후퇴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용비리 척결’과 ‘우리은행의 독립성 보장’은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인 만큼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르면 9일 이사회를 열어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방식과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명부 폐쇄 일자 등을 논의한다. 현재 우리은행 이사회는 이광구 은행장과 5개 과점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5명), 오정식 상임감사위원, 18.5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예보 측 비상임이사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가 열리면 임추위에 예보 몫의 비상임이사를 포함시킬 지를 두고 표결이 이뤄진다. 이 행장을 제외한 7명이 참석 예정인데 과반 참석, 과반 득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명목상 과점주주 5명이 ‘반대’를 하면 정부 쪽 인사는 임추위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전례로 봤을 때 실제 결론은 만장일치 ‘찬성’ 또는 ‘부결’로 결론 날 공산이 크다. 그 동안 이사회는 이런 안건에 대해 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 왔다. 지난해 12월에도 임 전 금융위원장이 “정부가 우리은행장 선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이사회에선 만장일치로 과점주주 측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임추위가 구성됐다.
정부는 임추위 참여 여부를 놓고 아직 저울질을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임추위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혜 채용 비리 의혹과 사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상업-한일은행 계파 싸움 등을 봉합하고 내부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선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과점주주를 비롯해 금융권 안팎에서는 예보 몫의 비상임이사가 임추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관치 부활’이란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사외이사는 “관치 논란이 불거지며 주가도 급락하고 있다”며 “정부가 다시 칼자루를 쥐겠다는 건 결국 행장 선임을 정부가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창현 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도 “우리은행 특혜 채용 추천자가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은행이 여전히 얼마나 외압에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민영화와 자율경영이 필요하다는 게 증명된 셈인데, 이를 빌미로 개입하려는 건 ‘낙하산 인사’를 보내기 위한 포석이란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지분이 남아 있어도 우리은행은 큰 틀에서 ‘완전 민영화’라는 궁극적 목표가 있는 만큼 민간 금융회사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책은행은 정부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가 맡아도 되지만 민간은행은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며 “우리은행도 그런 차원에서 보험사와 증권사 등 민간 기업들을 주주로 끌어들인 것인데, 이제 와 단일 최대주주란 이유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민영화 취지에 어긋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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