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시 사업가 출신다웠다. 안보 동맹국인 한국에 첨단 전략무기 구매 약속을 받아내고는 그 동안 날을 세웠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현안이나 이른바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 논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첨단 전략 무기는 한반도 안보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필수 자산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만의 실리는 아니라는 평가다. 특히 촛불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확고한 한미동맹의 신뢰 구축 또한 절실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약 25시간에 걸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한미가 ‘윈윈’하는 결과였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코리아 패싱’설을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한 데 이어 8일 국회 연설에서도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역사까지 언급하며 한국 국민의 정서적 부분을 터치했다”고 말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도 “미국의 안보 공약을 받아냈다”고 해석했다.
외교ㆍ안보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는 점이 트럼프 방한에서 문재인 정부가 확보한 최대 성과라고 입을 모았다.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한국의 미사일 중량 제한을 완전히 없애고 미국의 최첨단 군사 자산을 획득ㆍ개발하기 위한 협의에 착수한다는 합의도 우리에게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부 첨단 무기는 지역 전략 균형을 해친다는 이유로 과거 미 정부들이 팔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라고 했고, 박원곤 교수는 “공동 개발도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회”라고 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국익을 아예 챙기지 않은 건 아니지만 노골적이지 않았던 데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면 첨단 무기 구매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국회 연설이 트럼프 대통령 방한의 백미였다는 호평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 핵 개발을 비확산 체제와 동북아 안정에 대한 도전이라고 축소 해석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국회 연설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 규정하고 북한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며 “한반도 통일까지 염두에 뒀다고 여겨질 정도로 깊이가 깊어졌다”고 했다. 홍현익 위원은 “얼마 전 한중 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갈등 봉합 합의를 보고 불만을 품었을 텐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중관계 개선을 훼방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외”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는 방중을 앞두고 스스로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없지 않지만, 그보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큰 몫을 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한미 FTA 관련 무역 불균형 문제를 명확히 인정하고 무기 구매 약속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키는 등 정상회담 전에 불협화음을 일으킬 만한 요인들을 미리 제거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해하는 ‘대북 대화 필요성’ 언급의 비중을 문 대통령이 의식적으로 줄였다”며 “코드를 맞춰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미ㆍ중 ‘균형외교’ 관련 질문도 “외교관계 다변화로 균형 있는 관계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피해갔다.
다만 북핵 위협이 극대화했는데도 당장 동맹을 지키는 실질적 안보 해법이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박원곤 교수는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한 미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했다. 일각에는 북한이 도발 중단과 핵 동결을 선포할 경우 한미 간 이견으로 공조에 틈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최강 부원장은 “미국의 대화 가능성 시사를 확대 해석하기보다 당분간 제재와 압박 지속이라는 합의 정신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