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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로 불러줘” ‘초콜릿 소녀’ 김혜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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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로 불러줘” ‘초콜릿 소녀’ 김혜수의 꿈

입력
2017.11.07 15:4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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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는 '미옥'에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살기를 내뿜는다. 범죄조직 2인자인 미옥 역을 위해 오른쪽 옆머리를 반삭발했다. 서늘한 느낌을 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탈색해 은빛으로 했다. 잦은 탈색으로 머리 주변에 화상도 입었다. 씨네그루㈜카다리이엔티 제공
배우 김혜수는 '미옥'에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살기를 내뿜는다. 범죄조직 2인자인 미옥 역을 위해 오른쪽 옆머리를 반삭발했다. 서늘한 느낌을 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탈색해 은빛으로 했다. 잦은 탈색으로 머리 주변에 화상도 입었다. 씨네그루㈜카다리이엔티 제공

“니키타로 불러줘!” 배우 김혜수(47)는 극장에서 뤼크 베송 감독의 프랑스 영화 ‘니키타’를 친구들과 보고 난 뒤 극 중 배역에 대해 꿈을 키웠다. 김혜수가 스무살이 되던 1990년 일이었다. 짧은 머리에 총을 들고 누군가를 저격했던 여성 킬러의 날카롭고 서늘한 눈빛. 1985년 초콜릿 TV 광고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 청순한 소녀로만 살았던 그에게 니키타의 모습은 머리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여성이라 멋졌고 끌렸다”고 옛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니키타’와 만나고 27년 뒤 김혜수는 장총을 들고 비장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새 영화 ‘미옥’(9일 개봉)에서 그는 범죄조직의 2인자인 미옥을 연기한다. 은빛 반삭발 머리에 총을 쏘고, 전기드릴과 단도를 휘두르며 사내들을 제압하는 모습엔 살기가 가득하다.

정작 배우는 “액션 연기가 두려웠다”며 한숨을 내쉰다. 역경이 많았다. 김혜수는 영화를 찍는 석 달 동안 근육통을 달고 살았다. 10㎏의 총을 흔들림 없이 조준하는 것도 숙제였다. 그의 입에선 “액션 (연기) 되게 싫어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혜수는 서울 미동초등학교 태권도 시범단원이었다. 드라마 ‘시그널’(2016)에서 형사 역으로 강렬한 인상까지 남긴 그가 액션 공포증이라니. “태권도도 폼은 좋은데, 격파는 무서워서 못해요.” 엄살은 계속됐다. “액션 영화 출연 제의도 많이 왔는데 두려워 못했죠.” 실제로 김혜수는 연기 생활 30여 년 만에 ‘미옥’에서 처음으로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배우 김혜수는 "'타짜'에선 대사에 욕이 나와있었지만 어색했는지 편집됐다"며 "'미옥'에선 욕을 했더니 여성 스태프들이 좋아하더라"며 웃었다. 강영호 작가 제공
배우 김혜수는 "'타짜'에선 대사에 욕이 나와있었지만 어색했는지 편집됐다"며 "'미옥'에선 욕을 했더니 여성 스태프들이 좋아하더라"며 웃었다. 강영호 작가 제공

‘미옥’은 범죄조직 일원인 미옥과 임상훈(이선균), 검사 최대식(이희준)이 각자의 욕망에 사로 잡혀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그린다. 김혜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 누아르를 시도한 게 특징이다. 김혜수에겐 차이나타운 뒷골목에서 장기밀매를 하던 엄마(‘차이나타운’ㆍ2014)역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이다.

누아르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장르다. 편견에 맞서는 작업인 만큼 김혜수에게 이 장르는 특별하다. 김혜수는 “남자 배우 중심의 이야기에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 캐릭터의 한계는 국경을 뛰어 넘어 영화계의 오래된 문제”라며 “이 상황에서 여성 누아르 영화가 시장에 나오고 있다는 건 관객들이 여성 중심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뜻”이라고 봤다. 배우로서 그가 누아르에 천착하는 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다 발산하지 않고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장르적 분위기에 끌려서다.

‘타짜’(2006)의 정마담부터 ‘도둑들’(2012)의 펩시, 드라마 ‘직장의 신’(2013)의 미스 김까지. 김혜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소중한 연인’과 ‘국가 부도의 날’ 등 개봉 대기 중인 영화도 줄줄이다. 김혜수는 ‘미옥’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다 “이걸 얘기해도 되나”라고 망설이다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김혜수는 “미옥이 평범한 삶을 꿈꾸며 조직에서 은퇴를 준비하는데 그 설정에 마음이 끌리더라”며 “나도 내가 택한 이 길(연기)이 맞나 고민하고 그만 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화려한 이력 뒤에 배우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그는 “아주 운이 좋아 오랫동안 활동했지만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니까...”라며 말을 아꼈다. 열 여섯에 연예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배우로서의 삶은 곧 자신의 인생이다. 기성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영화계에서 여배우로서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국내뿐 아니라 영화 산업의 선진국이라 믿어왔던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최근 여배우들에 대한 잇따른 성희롱 파문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혜수는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가해자는 늘 교묘하게 (숨어) 있죠. 지금은 (영화계 여성 문제에 대한) 과도기에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예요. 단순히 비난하거나 분노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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