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곳으로’를 다 읽고 나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에 빠진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걸까. ‘사랑해’라는 말로 끝나는 소설을, 시작부터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하리라 선언하더니 진짜로 사랑을 품은 이들의 대화로 마무리하는 소설의 대책 없는 순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리고 잠시 후 깨닫게 된다. 이런 거구나. 사랑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구나.
최진영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는 대재앙을 피해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향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매, 가족, 연인, (유사)남매라는 관계로 계속해서 살아남아 사랑을 지키려 하고, 사랑하지 않음을 인정하며, 사랑을 품고, 사랑을 기다린다. 그 신념과 회의와 상심, 인내를 통해 소설은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하는 사랑의 책무를 이야기한다. 최진영에게 사랑의 가장 신비로운 무능력은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사랑에 대한 기록으로만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두 여성이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고 점차로 애정을 키우다가 헤어지고 재회해 드디어 우리를 이루는 소설이며, 그 과정에서 그들이 여성으로서 ‘가장 안전한 장소’를, 성소수자로서 ‘침 맞지 않을 장소’를 찾아 헤매는 이유에 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 내몰렸던 이가 ‘공평한 불행’ 앞에서 아픔을 드러내는 소설이자, 내 가족을 위해 ‘명예로운 전투’에 가담한 이들이 어떠한 대의를 방패삼아 여성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지를 목격하도록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여성들이 계속해서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재촉하고 있음을 알아챌 때, 아버지(가해자들)와 딸(피해자들)이 젠더 폭력의 장소에서 대면하는 순간의 공포에 몸서리칠 때 우리는 이 소설이 오지 않은 재앙이 아니라 이미 온 재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사랑만을 강제로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자들 속에 대재앙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최진영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 곳곳에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공표한다. 비워둠으로써 성실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디테일’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수자의 삶을 타자화하는 재현에의 폭력에 대한 이 거부를 나는 이 소설이 가진 가장 강한 약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이 소설이 가진 감정을 신뢰한다. 어떤 소설은 그런 일을 해낸다. 읽는 이가 소설 속 인물을 믿게 하고 인물 간의 사랑을 믿게 하며 그리하여 저 끝까지 돌진해 보겠다는 그들의 선언에 연대하게 한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창궐하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가장 난처하게 하는 소설이 생겨났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출발할까?’라는 물음이다.
김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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