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5.46원 연중최저점 기록
아베노믹스 장기화 조짐에
9월 이후 하락세 계속
성장 기대감에 원화는 강세
원-엔 환율 10% 하락하면
수출 9.2% 감소 추정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일본 엔화와 한국 원화 가치의 ‘역주행’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원ㆍ엔 환율이 6일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상품 구입이나 여행을 계획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국내 기업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재선 성공으로 당분간 아베노믹스의 기세도 줄어들 가능성이 작아 회복세를 보이는 우리 경제에 ‘수출 경쟁력 악화’라는 악재가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6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원ㆍ엔 재정환율은 전거래일보다 100엔당 1.73원 하락(엔화 대비 원화 가치 강세)해 연중 최저점인 975.46원을 기록했다. 원화와 엔화가 직접 거래되지 않는 탓에 원ㆍ달러 환율과 엔ㆍ달러 환율을 간접 계산해 산출하는 원ㆍ엔 재정환율은 두 통화의 비교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올 들어 꾸준히 1,000원대를 유지하던 원ㆍ엔 환율은 지난 9월8일(1,045.77원) 이후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지난달 20일엔 심리적 지지선인 1,000원이 무너졌고, 이후에도 계속 하락폭을 키우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 하락은 무엇보다 아베노믹스(과감한 통화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골자로 한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장기화 조짐 때문이다. 9월초만 해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위협 등에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가치가 치솟았던(엔ㆍ달러 환율 하락) 엔화는 지난달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승리하자 다시 수위를 낮추기 시작했다. 구로다 일본은행(BOJ) 총재가 이날 “성장세에 비해 물가 상승 압력이 약하다”고 언급하는 등 최근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흐름과는 반대로 일본은행은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할 걸로 보이는 점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사이, 원화는 도리어 강해졌다. 3분기 성장률이 1.4%로 예상을 뛰어넘은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를 둘러싼 한중 긴장 완화,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는 코스피 등 경제 성장의 기대감이 커진 데 따른 결과다.
수출기업에겐 원화 강세 하나도 부담인데, 일본 엔화란 이중고가 겹친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100대 수출 품목 중 55개가 중복(2013년 기준)될 만큼 세계 시장에서 여전한 경합관계다. 엔저를 이용해 일본 기업들이 가격 인하 공세를 펼칠 경우 한국의 주요 수출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서 현대경제연구원은 원ㆍ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일 간 경쟁이 치열한 철강업종(-13.1%)을 비롯해 우리나라 총 수출이 9.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도 원ㆍ엔 환율 1% 하락 시, 우리나라 수출이 0.49% 감소하고, 특히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제품은 0.7~1%까지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심혜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엔저 장기화에 대비해 수출기업들은 꾸준한 환율 모니터링과 함께 장기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다만 한편에선 국내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엔저에 대한 내성 강화로 엔화 환율 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가격 경쟁력만 내세우던 과거와 달리 국내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엔화 가치 하락이 수출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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