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공동체에선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던 일이 벌어졌다.”(조 태킷 윌슨카운티 보안관)
5일(현지시간) 오전 11시20분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동쪽 54㎞ 지점에 있는 소도시 서덜랜드스프링스의 제1침례교회.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주일 예배가 진행되던 이때, 검은색 완전 전투복장 차림의 괴한이 교회 안으로 들이닥쳤고 루거 AR-15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약 15초 동안 수십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천국을 꿈꾸던 신도들의 평화롭던 예배 현장은 순식간에 생지옥이 됐고, 최소 26명이 숨지고 20여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달 1일 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1개월여 만에 또 다시 대규모의 총기 참극을 접한 미국 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그러나 범인이 곧이어 사망한 데다, 범행 동기를 추정할 만한 단서도 현재로선 별로 없어 사건의 실체 규명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참혹한 비극에 현지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구 643명(2016년 조사 기준)에 주유소 2곳, 우체국 1곳에 불과한 자그마한 시골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이 곳에서 대도시에서나 있어 왔던 무차별 총격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유소 인근에서 일하는 크리스 스피어(38)는 로이터통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기 사고 같은 것을 피하려 이 곳에 온다. 100만년이 흘러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희생자들에 대해 “5세 아동부터 72세 노인까지 있다”는 당국 발표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교회 담임목사인 프랭크 포머로이 목사의 14세 딸 애너벨도 사망했다. 주민 코트니 리(25)는 “(범행의) 이유라도 알고 싶다. 어떻게 어린 아이들의 생명까지 빼앗을 수 있나”라고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범행 동기는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총격범 신원에 대해 26세 백인 남성 ‘데빈 패트릭 켈리’라고 밝혔는데, 현지 언론들은 그에 대해 “2010년부터 미 공군으로 복무하다 2012년 아내와 아이를 폭행한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됐고 1년간 감금된 뒤, 2014년 불명예 제대한 전직 군인”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페이스북에 AR-15 반자동 소총 사진과 함께 ‘그녀는 나쁜 X’이라는 욕설을 남긴 그는 그러나 범행 후 차량을 몰고 인근 과달루페 카운티로 달아났다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추적하던 주민의 총에 사살됐는지, 자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확한 범행 이유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총기 난사는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를 공격한 것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범인도, 희생자들도 백인이었다”며 ‘인종혐오 범죄’일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극단주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테러로 의심할 만한 흔적도 없다. 미 당국은 “켈리가 조직화한 테러 단체와 연계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테러 여부가 밝혀질 수 있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범행 직전 행보는 교회 맞은편 주유소에서 잠깐 멈춰 섰다는 게 전부다. 교회 내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자들이 회복해 목격담을 전하기까지 사건의 전말은 한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텍사스 역사상 최악의 참사”(그레그 에벗 주지사)인 이 사건은 미국 내 총기규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일 전망이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4명 이상이 희생된 총기난사 사건은 벌써 307건이다. 그러나 아시아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총기 문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이며, (범인도) 비정상적인 미친 사람”이라고 규정, 사실상 이를 일축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