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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3不 원칙, 주권과 굴욕 사이

입력
2017.11.06 17: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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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ㆍ중ㆍ일ㆍ러 협력은 북핵 해결 틀

흔들린 한반도 균형추 회복 필요한 일

정당한 주권적 판단 비하하지 말아야

대중 3불 입장표명은 굴욕일까. 사진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첫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중 3불 입장표명은 굴욕일까. 사진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첫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엊그제 육군협회 초청 강연회에서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한반도 안보 형세를 설명했다. 손바닥이 북한이라면 이를 둘러싼 5개의 손가락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다, 각각의 손가락으로 공격한다면 힘이 전달되지 않지만 5개 손가락을 붙여 주먹을 쥔 상태로 공격한다면 훨씬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김정은의 주변국 분열 전략에 응집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게 요지다.

그동안 내 개인적으로 주장해 온 ‘부처님 손바닥론’과 맥이 통하는 얘기여서 반갑다. 한ㆍ미ㆍ중ㆍ일ㆍ러 5개국이 구축한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손오공 길들이듯 김정은 정권을 통제하고 변화시키자는 게 부처님 손바닥론이다. 5개 국가의 군사력을 포함한 전체 국력에 비하면 지구상의 대표적 실패 국가인 북한은 훅 불면 날아갈 티끌이다. 이 5개 국가들이 의기투합하면 외교적 방법을 쓰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든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 하나 해결 못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 직후 내세웠던 ‘최대 압박과 관여’의 대북 정책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할 틀도 바로 5개국의 부처님 손바닥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핵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서울과 도쿄를 사실상 인질로 삼고, 급기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지경이다. 브룩스 사령관의 관점을 따라 말한다면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 자체보다 함께 힘을 모아 억제하지 못하는 5개국에 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 G2를 구가하는 미국과 중국의 책임이 크다. 두 나라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협력하기는커녕 동북아에서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북한의 도발을 활용하는 감이 없지 않다.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사드 갈등을 봉합하기 앞서 ‘3불(不)원칙’ 을 천명한 것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 국감 중 사드 추가 도입을 검토하지 않고, 미 MD체제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정부의 이 입장은 다음날 한중 양국 외교부가 동시에 발표한 합의문에서 재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엊그제 외신 인터뷰에서 한미일 안보동맹 불가론과 미중 사이의 균형 외교론을 펴며 이를 뒷받침했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 눈치를 보며 주권을 포기했다거나, ‘제 2의 삼전도 굴욕’ ‘시대착오적 광해군 코스프레’ 등의 자극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한국 방문 등 트럼프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문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 기조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안보보좌관 등의 관련 언급을 미국 행정부와 군부 핵심의 우려로 해석하는 보도도 줄을 잇는다.

하지만 3불 원칙을 5개국 부처님 손바닥론에 비춰 다른 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잘 알다시피 한반도의 지정학상 미ㆍ중의 대결 무대가 되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두 강대국 사이 끼여 독자적 입지가 매우 협소해지는 탓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미중 경쟁보다 협력 속에서 우리의 동북아 외교 비전을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막무가내 핵ㆍ미사일 도발 속에 주한미군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균형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 3불 원칙 천명은 그 기울어진 균형추를 되돌리는 의미가 있다. 미ㆍ중 두 강대국이 핵심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우리가 어찌할 수는 없다. 더욱 강력해진 시진핑 2기 중국의 군사 외교적 굴기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이 눈 앞에서 격돌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적어도 북핵ㆍ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5개국 협력의 틀을 구축할 수 있는 방향에서 외교안보의 비전을 찾아야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3불 원칙 천명은 주권의 포기나 굴욕이 아니라 정당하고 필요한 주권의 행사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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