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기업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태양광 모듈과 전지, 세탁기에 이어 수출을 떠받치는 반도체로 미국의 통상압박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반도체 패키징시스템 업체 테세라의 ‘웨이퍼 레벨 패키징(WLP)’ 기술 침해와 관련해 조사를 개시했다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미 ITC는 관세법 337조에 근거해 자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수입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WLP는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기판(웨이퍼)을 칩 단위로 절단하지 않고 웨이퍼 단계에서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테세라는 지난 9월 28일 삼성전자가 WLP 등 자사 특허 24건을 침해했다며 미 ITC와 연방지방법원 3곳, 국제재판소 등에 제소했다. 당시 테세라 측은 “1997년 체결한 라이선스 계약이 지난해 말 만료됐지만 삼성전자는 정당한 대가 지불 없이 계속 특허기술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테세라는 미 ITC에 삼성전자 반도체는 물론, 반도체가 적용된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PC 카메라 등의 수입금지와 판매 중단까지 요청했다. 최악의 경우 갤럭시노트8 등 삼성전자 주요 제품들의 미국 수출길이 막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조사 진행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미 ITC는 이번 사건을 조사할 행정법 판사를 배정하고 45일 이내에 조사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지난 2013년에도 미 ITC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최종 판정, 갤럭시S2와 갤럭시탭 등의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한 전례가 있다.
앞서 지난달 5일 ITC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한국산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청원을 심사해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있다”는 예비 판정을 내렸다. 같은 달 31일에는 수입제품으로부터 미국 태양광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30% 이상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세이프가드 권고안도 마련했다. SK하이닉스도 미국 반도체 업체 넷리스트로부터 특허 침해 공격을 받았지만 ITC는 아직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기업을 보호하는 흐름에 맞춰 미국 기업들의 ITC 청원이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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