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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람 곁엔 사람이 있습니다”

입력
2017.11.05 15: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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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이 마지막 밤일 거 같은 밤을 엄마 손 꼭 잡고 지새고 있다. 거친 호흡이 가라 앉으시더니 꼭 갚은 잠을 주무시는 거 같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밤, 친구는 카톡방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지신 후 몇 달, 특히 지난 며칠 동안 친구의 마음엔 천 가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백만 가지 후회 또한 일었으리라. 친구는 의식을 자꾸 놓치시는 중환자실의 엄마를 보고 나올 때면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휘청이는 몸을 가누지 못해 몇 번을 주저앉기도 했을 게다. 머지 않은 미래에 부모님을 떠나 보내야 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카톡방의 동창들은 편히 가시길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밤, 친구의 어머니는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한 시간 동안 친구 손을 꼭 잡고 푹 주무시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은행잎이 속절도 없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시월 어느 맑은 날에, 무남독녀 외동딸 내 친구는 엄마마저 돌아가셔 오십 넘은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님께 작별인사를 하러 장례식장에 갔다. 문상객을 맞이하는 안내 데스크에는 일찌감치 달려온 동창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속 깊은 한 친구는 저도 상복을 갖춰 입고 상주의 허전한 자리를 채워주었다. 운구를 걱정하는 친구를 위해 여섯 명의 동창들이 운구를 하겠다고 나섰다. 밤이 늦도록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동기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누구는 커피를 사오고 누구는 뻥튀기를 가져 오고 누구는 사과, 배를 깎아 오고 누구는 호떡을 들고 오고… 상가의 우리들은 울다가 먹다가 얘기하다가 헤어질 땐 그 어느 때보다 더 세게 서로를 포옹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가 원두막을 만나 잠시 쉬며 간식을 나누어 먹는 것처럼 장례식장에서 우리들은 편안하고 평화롭고 행복했다. 날씨도 좋으니 모여서 잘 먹고 놀다 가라고 친구 어머니께서 큰 돗자리를 깔아주신 것 같았다. 친구는 언니, 오빠 많은 10남매 집안의 막내가 된 기분이 라며 든든해 했다.

부고를 자주 듣는 나이가 되고 보니, 10여 년 전 제작된 한 통신사의 광고가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광고는 절망하고 슬퍼하고 두려워 하는 우리를 억지로라도 웃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흑백톤의 화면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화면에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중년 남자, 시합에 패배하고 고개 숙인 권투선수, 상을 당한 상주와 위험한 화재 현장을 누비는 소방관이 등장한다. 모두 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옆에서 손 잡아주고 위로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띤다.

자막) 누가 웃게 합니까 두려움 속의 당신을

누가 웃게 합니까 절망에 빠진 당신을

누가 웃게 합니까 슬픔에 잠긴 당신을

누가 웃게 합니까 위험에 놓인 당신을

사람 곁엔 사람이 있습니다.

NA) 사람을 향합니다.

(SK텔레콤_TVCM_2006_카피)

장례식장에 앉아 따뜻한 된장국을 먹었다. 찰진 흰 쌀밥에 전과 멸치볶음, 홍어무침이 먹을 만 했다. 이병률 시인이 쓴 대로 ‘조금 싸다가 한 며칠 차려 먹으면 좋겠다 싶게 상가 음식은 이 세상 마지막 맛인 듯’ 입에 달았다. 그리고 상가를 지키는 친구들의 말소리는 조용조용 낮게 울렸다. 어떤 친구는 안 계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었고, 어떤 친구는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기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기에 외롭지만은 않겠다고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들을 보내드린 후 언젠가는 우리끼리 서로를 보내야 하는 날도 올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도 오늘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처럼 소근소근 따뜻하고 다정했으면 좋겠다. 엄마 잃은 내 아이들 곁에도 내 친구처럼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많았으면 정말 좋겠다. 사람 곁에는 그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있어야 한다.

(SK텔레콤_TVCM_2006_스토리보드)

(SK텔레콤_TVCM_2006_유튜브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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