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 김흥수 부산항센터장
7년동안 근무하며 남다른 애착
태풍 오면 발전실서 물 퍼내고
‘볼라벤’ 땐 보름간 고립돼 근무
“태풍이 오면 오륙도 등대 3층까지 파도가 들이쳐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사투를 벌이며 지켜온 유인 등대가 무인화된다니 개인적으론 마음이 아프네요.”
1993년 9월 부산해양수산청에 전입해 28년간 등대지기로 살아온 김흥수(49) 부산항센터장은 오륙도 등대의 무인화 소식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지금까지 오륙도 등대에서만 6~7년을 근무해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부산해양수산청은 해양수산부의 계획에 따라 오륙도 등대를 무인화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올해 설계를 마치고 영도 등대에서 오륙도 등대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내년에는 무인 등대로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오륙도 등대는 부산의 상징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11월 점등해 현재 영도 등대, 가덕도 등대와 함께 부산에 남은 3개의 유인 등대 중 하나다. 오륙도 등대는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좁은 바위섬(등대섬)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등대지기 사이에서 오륙도 등대는 ‘잠수함 등대’로 통한다. 최초 점등 시 6.2m의 높이였다가 1998년 말 27.55m로 개량됐지만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 이로 인해 태풍이 상륙하면 등대 3층까지 파도가 들이쳐 1층 발전실에 물을 퍼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태풍 ‘차바’와 ’매미’가 상륙했을 때가 기억난다”며 “3층에 파도가 들이닥쳐 창문이 깨지고 1, 2층으로 바닷물이 타고 내려와 1층 발전실의 장비 셧다운을 막기 위해 물을 퍼내는 일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태풍이 상륙할 때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기도 했단다. 2012년 8월 나흘간 연속으로 몰아친 태풍 ‘볼라벤’과 ‘덴빈’ 당시 그는 오륙도 등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무려 보름간 꼼짝없이 등대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근무를 섰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당시 2인 1조로 근무했고 보통 3일간 오륙도에 들어가 근무하고 교대하는데 태풍 상륙 당시에는 배가 뜰 수 없어 교대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그래도 비상 쌀이 있어 먹는 것은 괜찮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륙도 등대는 오랜 기간 뱃사람들에게 육지를 알리는 표지였다. 촛불 200만개를 켠 것과 같은 200만 칸델라(cd) 밝기로 10초에 1번 깜빡이는데, 다른 유인 등대인 영도는 18초에 3번, 가덕도는 12초에 1번 깜빡인다. 뱃사람들은 멀리서 이 불빛을 보고 ‘오륙도에 다 왔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 센터장은 “육지를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바로 유인 등대”라며 “그것이 사투를 벌이면서도 유인 등대를 지켜온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수많은 선배들의 손때가 묻은 등대가 기술의 발달로 무인화되고 그 순간에 마지막 근무자로 서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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