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나포된 후 내내 고의로 월북조업한 사실을 인정하라고 강요받았습니다. 버티다 못해 자필로 진술서를 쓴 다음날 겨우 풀려나게 됐습니다.”
북한에 6일간 억류됐다 지난달 27일 풀려난 ‘391 흥진호’ 선장 남모(47)씨는 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중국 저인망 쌍끌이 어선과 똑 같은 배가 접근했는데 잡히기 전까지 중국 어선 인줄 알았다”며 “배에 탄 사람들이 총을 들고 있어 중국 해적선인 줄 알고 해경 등에 알릴 새도 없이 무조건 도망갔다”고 말했다.
남 선장은 “북한측 조사과정에 가혹행위는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어 내내 불안했다”고 말했다.
남 선장과 선원 등 10명은 지난달 21일 오전 1시30분 북한 경비정에 나포돼 같은 달 27일 오전 흥진호에 탑승해 귀환할 때까지 원산항 인근 12층짜리 동명호텔에 억류됐다. 남 선장 등은 22일 저녁 식사 후 2인1실로 입실한 후 곧바로 잠을 잤다. 선장과 기관장(50), 갑판장(43) 3명은 각각 베트남 선원 1명과 같은 방에 배치됐다.
조사는 23일 아침부터 시작됐다. 북한 측은 10명 모두에게 백지와 볼펜을 주고 지난달 7일 제주도를 출항해 울릉도를 거쳐 나포될 때까지 진술서를 작성토록 했다. 남 선장은 “옆방에 조사관이 있다가 숙제 검사를 하듯 진술서를 검토한 후 잘못을 지적해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또 “북측 조사관은 진술서 곳곳에 ‘우리가 북조선 령에 들어온 것을 사죄하고 관대한 용서를 바랍니다. 같은 민족끼리 용서를 구합니다. 빨리 우리를 되돌려 줬으면 합니다’라는 문구를 쓰도록 강요했다”며 “영구 억류 목적으로 쓰라고 하는 것 같아 겁이 났다”고 회상했다.
남 선장이 지난달 26일 오전 견디다 못해 이를 인정하는 경위서를 작성하자 조사는 중단됐다. 그는 “북측이 이날 저녁 ‘냉동창고에 보관 중인 복어를 배로 옮겨줄 테니 배 발전기를 돌리라’고 해서 풀려나는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호텔은 난방이 잘 안돼 추웠고 물도 잘 나오지 않아 볼일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남 선장은 “정해진 시간에 욕조에 물을 받으면 샤워를 할 수 있기는 했는데 물에 흙이 떠다닐 정도로 깨끗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끼니마다 미역국과 된장찌개, 가자미구이, 도루묵찌개 등 국과 반찬이 바뀔 정도였다. 흥진호 선원들은 북한에 나포돼 원산항으로 이동하던 배 안에서 북한군에게 쌀과자를 얻어 먹었고, 갖고 있던 라면과 밥을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조리해 먹기도 했다.
선원들에 따르면 북한 측은 나포 후 송환까지 선원들에게 ‘김정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한편 남 선장은 이날도 해경조사에서 “북한 수역이 아닌 한일공동수역인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사실 파악에 혼선을 빚고 있다. 포항 해양경찰서는 GPS 포렌식 등 정밀조사를 통해 흥진호의 북한 해역 침범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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