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만 서른여덟 살 이동국(전북 현대)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동국은 2일 전북 완주군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K리그 클래식 우승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운동장에서 뛰는 게 행복하고 자신감도 있다. (최강희) 감독님도 지난여름 면담 때 ‘내년에도 네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분 좋았다.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지난 달 29일 제주와 K리그 클래식(1부) 36라운드 홈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터뜨리며 프로축구 최초 통산 200골의 금자탑을 쌓았다. 전북은 3-0으로 승리하며 우승도 확정해 그는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동국은 우승 직후 은퇴를 고려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더구나 다음 날인 10월 30일, A매치 명단 발표 때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동국을 제외하며 “한국 축구 영웅인 이동국을 아름답게 보내줘야 한다. 이동국이 내년 월드컵 때 앞에서 뛰어주고 싸워주고 부딪혀 줘야 하는데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러시아 월드컵 로드맵에 이동국은 없다는 의미였다. ‘이동국이 강제 은퇴 당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동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그는 “한국축구가 발전되지 않는 건 나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은퇴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재 중국 프로축구 텐진 테다 지휘봉을 잡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전 대표팀 감독이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38세인 이동국이 아직도 대표팀 공격수다. 젊은 공격수가 없는 게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제가 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뒤 “후배들을 위해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은 매번 했지만 그들과 경쟁에서 내가 이겨냈다고 생각 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태극마크에 대해서는 초연했다. 앞서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 10차전에 뛰면서 본선행에 힘을 보탰던 이동국은 “제 역할은 한국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 시키는 것이었다”며 더 이상 월드컵이나 국가대표에 미련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이 나이에 대표팀 제외가 뉴스가 되니 신기하더라. 내가 아직 존재감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채찍질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선배 홍명보(48)나 황선홍(49), 가깝게는 후배 이영표(40)나 박지성(36)처럼 스스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할 계획은 없다. 선수라면 국가대표를 꿈꾸는 게 당연하니 태극마크를 먼저 반납하는 건 맞지 않다는 평소 그의 소신을 재확인했다. 이동국은 “제가 선수 은퇴하는 날이 (국가대표 포함) 모든 걸 마무리하는 날”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동국은 올해 전북과 계약이 끝난다. 그 해 말 계약이 만료되는 선수는 반년 전인 여름쯤 재계약을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전북은 지금까지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이동국은 “구단에서 아무 말이 없으니 ‘이 팀을 떠나야 하나’ 생각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앞날이 창창한 후배 이재성(25)을 가리키며 “나도 올해 자유계약(FA)이니 대박을 한 번 터뜨려볼까. 재성이랑 동반 해외 진출을 노리겠다”고 웃음 지었다. 전북 구단을 향한 뼈 있는 농담이었다.
완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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