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부담있는 고교 중심 논란
대광여고ㆍ제천고 등 신청 철회
학부모ㆍ동문 이어 재학생도 “반대”
혁신학교 정착 위한 해결과제는
전문가들 “교원 재교육 강화하고 대입제도 바꾸는 등 노력 필요해”
내년부터 혁신학교 전환을 추진하던 광주 대광여고는 광주시교육청의 혁신학교 지정 심의 결과 발표를 앞둔 지난 달 27일 돌연 신청 철회를 결정했다. 교육청에 항의 방문을 하는 등 학부모와 동문들의 격렬한 반발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학교 측은 “일방적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공부와 멀어질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앞선 9월 말 충북 제천고 역시 혁신학교 지정 계획을 공식 철회하고 준비학교 지정 2년 만에 일반고로 돌아가게 됐다. 일부 학부모와 동문들의 반대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재학생들까지 전환에 반대하고 나서자 학교측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 학교 1, 2학년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는 혁신학교 전환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8표 근소하게 앞질렀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한 수업 혁신을 내건 혁신학교의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혁신학교 전환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혁신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 저하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교육분야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혁신학교 확대를 선정하고, 진보교육감이 이끌고 있는 시도교육청에서 페달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학교를 둘러싼 갈등은 더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 혁신학교 중에서도 혁신고등학교다. 전국 혁신학교 1,154개(3월 기준) 중 혁신초등학교가 685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입시 부담이 있는 혁신고등학교는 119개에 머물고 있다. 실제 만족도에서도 온도차가 드러난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이 지난해 혁신학교 학생 1,076명과 일반학교 학생 1,058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초등학교에서는 혁신학교의 만족도가 더 높았던 반면 중ㆍ고등학교에서는 일반학교의 만족도가 높았다.
학력 논란도 시끄럽다. 지난해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혁신고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11.9%에 달해 전국 고교 평균(4.5%)의 3배에 육박했다는 통계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제시되자 서울시교육청이 반박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혁신학교 확대 지정에 속도를 낼 경우 갈등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교육계는 우려한다. 경기도교육감 시절인 2009년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도입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혁신학교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을 검토 중이고, 서울과 경기 등 진보교육감이 이끄는 교육청들은 저마다 대폭 확대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혁신학교를 학생들의 진로에 장애물로 몰고 가는 일부의 왜곡된 인식을 경계하면서도 무조건적인 양적 확대보다는 그 취지에 맞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단계적 접근을 주문한다. 조윤정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업 혁신으로 공교육의 전범을 삼겠다는 혁신학교의 취지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입시에만 목을 매고 있는 학부모들의 반대라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수업 혁신 성과가 도드라지는 성공 모델을 만들고 혁신학교의 수업 방식에 부합하도록 대학 입시를 바꾸는 등 제도적인 변화 노력과 함께 혁신학교 확대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도 “혁신학교의 전면 확대를 위해선 중ㆍ고교 체질 변화, 대입 전형 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 8월 교육부가 발표할 대입정책개선 종합안에 이런 그림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진단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학교를 두고 엄밀한 성과 연구나 진단 평가 과정이 없어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도입 취지대로 학생들의 창의성 확대는 얼마나 됐는지, 자기효능감이나 학습효능감은 얼마나 높은지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성과가 있다면 확실히 보여주고, 문제가 있다면 처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원 재교육 시스템 강화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김정안 서울시교육청 학교혁신지원센터장은 “혁신학교에 배정되고 싶지 않았거나 배정돼도 막상 혁신 교육을 실현하려니 고충을 겪게 되는 교사들이 있다”며 “내년 일부 대학에 개설될 혁신교육 석ㆍ박사 과정 등을 포함해 정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원 재교육 기반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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