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파동’ 4가지 교훈
➀정치 안보 문제 공감대 부족
다양한 분야 협력 늘려야
➁장밋빛 전망에 취해
꼼꼼한 분석 없이 성급한 투자
➂中, 한국 영향력 줄여갈 수도
반도체처럼 산업경쟁력 갖춰야
➃中에 집중된 경제교역 구조
탈중국의 길 적극 찾아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서 비롯된 한국과 중국의 관계 경색은 31일 양국 정부의 관계정상화 합의로 일단락됐다. 지난 16개월 동안 지속된 사드 파동은 특히 경제 분야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한국이 수출ㆍ생산ㆍ내수 등에서 입은 손실은 수십조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드 파동을 계기로 수교 25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중 관계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전처럼 중국을 사업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이번과 비슷한 곤경을 다시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교훈1: 돈으로 쌓은 우정은 얄팍하다
가장 먼저 되새길 점은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관계가 지나치게 경제 쪽에만 집중된 관계였다는 점이다. 양국은 서로 투자와 교역을 늘리며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 파트너가 됐지만 경제 외적인 면에선 그 동안 공감대를 거의 형성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최고지도자 간 신뢰 관계가 공고하게 구축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핵’이라는 돌발 상황과 급박하게 흘러가는 정세에 휩쓸리고 말았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안유화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한중 관계에서 정치협력 부문은 ‘전략적 동반자’라는 모호한 구호만 있었을 뿐 그 내용이 전혀 없었다”며 “사드라는 정치ㆍ안보적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정치 협력 부재를 깨닫게 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측의 이해를 제대로 구하지 못했던 점, 신뢰와 이해로 한국을 설득할 수 없었던 중국이 경제 보복으로 힘을 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 모두 이 같은 정치 협력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이해관계를 늘려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유럽이 석탄ㆍ철강ㆍ원자력공동체를 통해 통합된 것처럼 서로 이해관계가 많이 얽히고 설켜야 정치 위험(리스크)도 줄어드는 법”이라고 말했다.
교훈2: 중국불패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그 동안 중국이 워낙 고성장을 구가했고 한국 경제가 중국 성장의 수혜를 봐 온 탓에 위기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중국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취해 중국에 ‘올인’했다 막대한 피해를 본 분야가 바로 면세점 업계다.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며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고, 대기업은 정부 면허를 받아 앞다퉈 매장 숫자와 규모를 늘렸다. 그러나 사드 사태로 중국인이 발길을 끊으며 롯데 등 기존 면세점의 이익은 대폭 줄었고, 신세계ㆍ한화 등 신규 사업자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너무 쉽게 본 측면이 있었다”며 “꼼꼼한 시장 분석 없이 성급하게 투자를 늘리다 보니 위기상황에서 단기간에 많은 손실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온 최모씨는 “한국인은 13억명도 넘는 중국인이 한 개씩만 사도 대박을 칠 것이란 단순한 계산에서 일을 벌린다”며 “그러나 이미 중국에서 똑같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100만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훈3: 위기는 언제든 재현된다
정치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이런 일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추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언제든 유사한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며 “중국은 정치ㆍ외교ㆍ경제ㆍ문화 부문이 서로 분리돼 있지 않아 당 지도부의 결정에 여러 분야에서 통일된 행동(한국에 대한 제재)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꼭 사드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중국은 자기들이 약한 분야(문화)에서 한국 것을 가져다 썼을 뿐이고 앞으로는 점점 각 분야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산업경쟁력 강화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궁극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이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반도체 시장은 사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며 “결국 반도체 산업처럼 중국이 넘볼 수 없는 분야를 계속 만들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훈4: 탈중국 가능성을 모색할 때다
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ㆍ교역 구조를 다시 돌이켜 볼 때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리적(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으로나 산업구조(중국 제조업에 한국이 중간재를 대는 생산방식)상 한국 경제의 중국 쏠림은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쏠림 현상은 유사시 순식간에 위기를 증폭시키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성 교수는 “사드 문제는 그 동안 우리가 중국에 너무 경제적으로 의존했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며 “지금 중국은 내수 위주로 경제 체제를 전환하고 있는 만큼 결국 중국이 필요한 상품, 중국산과 차별화한 재화ㆍ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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