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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 향연 수묵화빛 겨울…안반데기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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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 향연 수묵화빛 겨울…안반데기 가는 길

입력
2017.10.31 17:5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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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산이 불탄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다. 눈부신 봄과 화려했던 여름의 기억 훌훌 털어내고 무채색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전국의 산자락은 마지막으로 가장 화려하게 치장하고 색의 향연을 펼친다. 아름다움은 경계에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색과 빛은 선명하게 갈라지고 모호하게 겹친다. 비밀의 통로를 헤집듯 그 경계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평창 대관령면에서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 가는 길의 발왕산 자락 단풍.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절정의 가을 풍경을 빚었다. 이하 모든 사진은 10월 27일 모습이다. 평창=최흥수기자
평창 대관령면에서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 가는 길의 발왕산 자락 단풍.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절정의 가을 풍경을 빚었다. 이하 모든 사진은 10월 27일 모습이다. 평창=최흥수기자
똑같은 길인데, 응달인 고루포기산 사면은 겨울 색에 더 가깝다.
똑같은 길인데, 응달인 고루포기산 사면은 겨울 색에 더 가깝다.

여행지로서 강릉은 자연스럽게 바다를 떠올리지만, 평창 대관령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왕산면 대기리는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해발 1,100m에 자리잡은 안반데기 마을은 명실공히 하늘 아래 첫 동네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IC에서 횡계읍내를 통과하면 2018 평창올림픽 주무대인 용평리조트다. 안반데기 가는 길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도암댐으로 흘러 드는 송천을 따라 가다가 왼편 가파른 언덕으로 난 도로를 올라야 한다. 송천은 고루포기산과 발왕산 사이 좁은 물길이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두 산자락의 색이 다르다. 양지바른 발왕산 쪽이 형형색색 화려함을 뽐내는데 비해, 응달인 고루포기산 사면은 겨울에 한발 더 다가선 상태다. 색 바랜 캔버스에 빨강에서 보라까지 여러 가지 물감을 스펀지로 엷게 두드려 놓은 듯하다. 그 파스텔 톤 수묵화의 느낌이 가을빛에 찬란한 단풍 못지 않다.

비탈밭에 조성한 초지와 주변의 단풍이 대조를 이룬 안반데기 풍경.
비탈밭에 조성한 초지와 주변의 단풍이 대조를 이룬 안반데기 풍경.
해가 뜰 무렵의 안반데기 풍경.
해가 뜰 무렵의 안반데기 풍경.
풍력발전기를 연결한 도로 어디서나 전망이 시원하다.
풍력발전기를 연결한 도로 어디서나 전망이 시원하다.

안반데기 마을은 바로 그 경사면 꼭대기다. 지그재그로 연결된 도로를 끝까지 오르면 산은 멀어지고 시야가 툭 트인다. 이곳 지형이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 판, 즉 안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안반데기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1965년경 화전민들이 구황작물을 심으며 농지와 마을을 개척했고, 1995년 무렵부터는 전국 최고의 고랭지 채소 산지로 자리잡았다. 가파른 산비탈을 대규모 농토로 일군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경이롭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동해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멍에’라 이름 지었다. 쟁기를 채운 소의 힘을 빌려 비탈밭을 개간한 고난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지금은 당연히 소형 굴삭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풍력발전기를 연결하는 길 어디를 걸어도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뿌옇게 안개가 내려앉은 골짜기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힘차게 뻗어 내린다. 채소 수확이 끝나 푸른 배추밭은 볼 수 없지만 스산하지 않다. 비료작물로 심은 호밀이 파릇파릇하게 초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 주변을 울긋불긋한 단풍이 감싸고 있어, 가을과 겨울 사이 풍경이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안반데기의 행정지명은 왕산면 대기4리, 도암댐에서 올라온 길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산속의 넓은 터, 대기(大基)1~3리로 이어진다. 이곳 역시 해발 800m의 고원이다. 강원도감자원종장이 위치해 전국에 씨감자를 공급하는 곳이기도 하다.

왕산면 대기리의 자작나무 숲. 대규모 군락은 아니어도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왕산면 대기리의 자작나무 숲. 대규모 군락은 아니어도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비료작물로 심은 청보리와 자작나무 숲의 조화.
비료작물로 심은 청보리와 자작나무 숲의 조화.
노란 잎이 떨어지면 새하얀 줄기가 더욱 매력적인 자작나무 숲.
노란 잎이 떨어지면 새하얀 줄기가 더욱 매력적인 자작나무 숲.

대기리에서 415번 지방도를 따라 정선 아우라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노추산 모정탑길을 만난다. 모정탑길은 차옥순 할머니가 집안의 액운을 막기 위해 1985년부터 25년간 쌓은 3,000기의 돌탑이 이어진 계곡 산책로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재미 삼아 혹은 정성을 모아 하나 둘씩 쌓아 올린 돌탑까지 더해 계곡 입구부터 약 1km에 이르는 산책로 양편으로 자연스럽게 돌탑이 형성됐다. 관광지로 조성하면서 매끈하게 잘 쌓은 돌탑도 있지만, 아무래도 허술하고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돌 무더기에 더 눈길이 간다. 삶이 늘 행복으로 충만하다면 간절함도 사라지는 법, 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다가 다시 희망을 찾는 과정이 세상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돌이 많은 지형이어서 바닥이 고르지 않다는 점만 빼면, 산책로는 경사가 거의 없어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소나무가 많지만, 사이사이에 섞인 활엽수가 익을 대로 익은 가을 정취를 한껏 더하고 있다.

3,000개의 석탑이 산책로를 이룬 노추산 모정탑길.
3,000개의 석탑이 산책로를 이룬 노추산 모정탑길.
관광객이 하나 둘씩 쌓은 돌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이 하나 둘씩 쌓은 돌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정탑길에서 안반데기까지는 ‘아리바우길’ 3~4코스에 포함된다.
모정탑길에서 안반데기까지는 ‘아리바우길’ 3~4코스에 포함된다.

최근 노추산 모정탑길과 안반데기를 연결하는 걷기길인 ‘아리바우길’이 새로 개설됐다. 동계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정선ㆍ평창ㆍ강릉 3개 도시를 연결한 길이다. 정선오일장을 출발해 대관령을 거쳐 경포해변까지 이어지는 132km를 9개 코스로 나눴다. 모정탑 구간은 정선 구절리역에서 배나드리마을까지 연결되는 아리바우길 3코스에 속한다. 배나드리마을에서 송천 물길을 거슬러 바람부리마을과 안반데기로 이어지는 구간은 4코스에 포함된다.

평창ㆍ강릉=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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