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역에서 경기도를 오가는 한 광역버스의 뒷문은 두꺼운 철판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승객이 타고 내리던 뒷문에는 얼핏 보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개조된 좌석이 설치되고 유리창에는 비상시 탈출 요령이 적힌 간단한 안내 스티커가 부착됐다.
해당 스티커의 비상시 뒷문 개방 요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뒷문에 설치된 개조 좌석 아래 가로 바를 들어 올린다. 둘째, 좌석을 뒤로 밀고 출입 통로를 확보한다. 셋째, 검은색 안전바 잠금 장치를 풀고 가로 배치된 안전바를 위로 들어올린다. 해당 동작은 그림을 통해서도 비교적 쉽게 설명된다.
다만 이 같은 방법으로 긴박한 상황에서 뒷문이 얼마나 빠르게 열릴지는 의문이다. 또한 뒷문에 설치된 개조 좌석이 차량 추돌 등의 사고에도 승객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지 역시 걱정된다. 해당 좌석은 일반석에 비해 무릎 공간과 앞좌석 등받이와의 간격이 매우 비좁은 편이다.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스티커 안내를 통한 뒷문 개방 요령 역시 실제 상황에서 얼마나 직관적으로 신속히 작동할지 의문이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좌석 아래 가로바를 찾아, 이를 올리고 뒤쪽으로 좌석을 밀어야 하는 일은 해당 안내처럼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어떻게든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진 후 문쪽 안전바 잠금 장치를 풀어야 하는데 플라스틱 재질의 500원 동전만한 이 작은 나사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쇠로 된 뒷문 안전바를 고정시키는 용도가 더 정확한 쓰임새가 아닐지 여겨질 정도. 뭐 또 어떻게든 풀리지 않던 잠금 장치를 돌렸다면 다음으로 쇠로 된 가로바를 들어올리고 바깥쪽으로 문을 열면 비상 탈출구가 확보된다.
광역버스에 뒷문이 사라지고 개조 좌석이 자리한 건 지난 2014년 7월, 정부가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광역 및 직행버스의 입석을 금지하며 시작됐다.
당시 급작스럽게 노선을 늘려야 했던 운수업계는 증차 보다는 궁여지책 뒷문을 개조하며 좌석 4개를 추가하기 시작한 것. 조사된 바로는 고속도로를 오가는 버스의 약 40%가 이 같은 개조가 이뤄졌다. 다만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입석 금지 조치는 승객과 운수업계의 반발로 탄력적으로 운영되며 제도가 유명무실화 되는 분위기다. 승객 안전을 위해 마련된 제도는 오히려 승객들의 불안함을 키웠다.
지난해 경부고속도로 전세버스 화재사고와 함께 뒷문을 막고 개조 좌석을 설치한 차량들에 대해 일부 언론을 통해 안전성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당시 국토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사고발생 등 비상시 탈출 방법에 대한 운수종사자 교육 강화와 차량 내 비상망치 및 소화기 등 안전장비 구비 철저, 비상 시 뒷문 개폐 사용법에 대한 안내문구 부착, 비상탈출요령에 대한 동영상 홍보, 버스 내 인화물질 제거 등을 운수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토부는 지난 4월, 2019년까지 16인승 이상 승합차에 비상문 설치를 의무화하고 승용차와 소형 화물차의 전좌석에 안전띠 경고음을 의무화 하는 등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마련하고 입법 예고 해왔다. 이를 통해 16인승 이상 승합차의 경우 승강구 2개 이상 또는 승강구와 비상문 각각 1개 이상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훈기 기자 hoon14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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