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A원장은 난감한 일을 겪었다. 첫째(5)와 둘째(2)를 함께 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모 B씨가 “둘째가 수족구 확진 판정을 받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지만, 첫째는 증상이 없어 정상 등원시키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형제인 만큼 추가 감염이 우려됐던 A원장은 “첫째도 미열이 있어 가정 보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B씨는 “맞벌이 부부여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A원장은 첫째를 원장실에서 격리 보육해야 했다.
수족구 등 감염병에 걸린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해 다른 아이를 전염시키는 일이 잦지만 관리망과 제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집 감염병 신고율은 지난해 3.4%에 그쳤다. 어린이집 원아 중 수족구, 유행성 독감, 장염, 수두 등 보육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정해진 법정감염병 10종의 발생추정인원이 100명이라면 이중 실제 신고인원은 3.4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서울(12.6%)은 신고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대전(0.7%) 경남(0.5%) 등 신고율 1% 미만인 곳도 수두룩했다. 특히 전남(0.02%) 광주(0.08%)는 0.1%에도 못 미쳤다.
법적 의무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고율이 저조한 1차적인 이유는 평판 저하에 대한 우려다. 서울지역 또 다른 어린이집 B원장은 “의무를 어겨도 제재가 없기 때문에 평판 저하를 우려해 가급적 신고를 하지 않는 게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여기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고 납부한 원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감염병 증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추고 등원을 밀어붙이는 ‘얌체’ 학부모들도 한 몫을 한다. A원장은 “수족구 증상이 눈에 보여도 학부모가 ‘모기에 물린 것’이라고 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 성남에서 한 살짜리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박지혜(32)씨는 "딸이 장염을 옮아 와 따져 물었더니 보육교사도 병균을 옮긴 원아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고 하더라"며 “이기적인 학부모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고 씁쓸해했다.
원아의 등원을 금지할 권한이 어린이집 측에 없는 것도 문제다. 복지부 지침은 ‘감염병 의심 등 이상징후 발견 시 일단 신고를 하고 1차적으로 가정 내 보육을 유도하되 불가피하면 별도 공간에서 분리 보육하라’고 하고 있다. 정춘숙 의원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감염병 관리방안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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