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나라’ 일본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한 카지노 합법화가 이뤄지면서 도박중독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일본은 어디를 가도 파친코로 불야성을 이루지만 전후 70년이 넘도록 카지노를 불허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카지노를 포함한 통합형 리조트(IR) 추진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쿄올림픽을 정점으로 각지에 카지노 시설이 등장할 전망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일본 정부는 파친코 등 도박중독 대책에 부심하며 실태 파악에 서두르고 있다.
일본에서 도박중독이 의심되는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46세 전후 연령대가 가장 심하다. 후생노동성은 전국단위 조사를 처음 실시해 지난달 말 이같은 추정치를 발표했다.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ㆍ광역지자체)에 1곳 이상의 도박의존 전문의료기관을 지정키로 하고 정신보건 복지센터에 전문상담원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내년부터는 자조그룹(증상이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 등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도 추진된다.
도박중독의 실태는 심각하다. A씨(37)는 대학 시절 친구를 따라 재미로 시작한 파친코에 빠져 사채업자에게 130만엔(약1,290만원)을 빌리면서 선을 넘게 됐다. 하루 최대 43만엔의 대박이 터진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계속 빚을 키우며 파친코에 빠져들었다. 24살 때 결혼한 그는 막대한 빚에 시달려온 사실을 가족에게 들켜 한동안 도박을 끊었지만 5년 후 파친코 옆을 지나가다 한순간에 무너져 결국 250만엔을 빚진 후 이혼과 실직으로 내몰렸다.
중독회복 민간시설에 입소중인 그는 “도박의존이 본인 의지라고 추궁하지만 ‘도박장애’로 분류되는 병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뇌가 ‘대박’의 전율을 기억해 헤어나오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일본의 파친코는 1990년대 절정기와 비교하면 최근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연간 업계 전체 매출이 20조엔에 육박할 정도로 대중적인 오락이다.
파친코에 더해 급기야 카지노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중국의 아편전쟁을 기억 못 하나” “업계이익을 위해 국가가 일본인을 도박장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등 정부 당국을 겨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경찰 당국이 파친코의 도박성을 줄이기 위해 한 번에 가장 많이 딸 수 있는 구슬 수를 3분의 2수준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또 경마장과 경정장에 설치된 현금자동출납기(ATM)의 출금 기능을 없애거나 ATM 기계를 주변에서 철거하는 원초적 방법도 동원키로 했다.
카지노를 불허해온 데는 파친코 업계의 견제가 꾸준히 작용했다. 그러나 올림픽 개최와 관광 대국의 명분이 득세하면서 양측이 경쟁 관계가 된 것이다. 일본당국은 도박중독을 막기 위해 자국민의 카지노 입장 횟수를 제한할 방침이다. 입장 때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마이넘버 카드’를 제시해야 하며 주 단위, 월 단위 등의 제한을 두는 식이다. 물론 20세 미만이나 폭력배의 출입도 금지된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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