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즌2가 종영한 드라마 ‘청춘시대’에는 대학생의 주거 문화로 셰어하우스가 등장한다. 1인실 한 칸과 2인실 두 칸, 화장실이 한 칸 있는 집에서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다섯 명을 부르는 호칭은 ‘하메(하우스 메이트)’이다. 단순히 선후배라고 하기도, 서로를 친구라고 규정짓기도 애매한 이들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시간이 겹쳐서 정신 없는 아침을 보내기도 하고 서로로 인해 크고 작은 불편을 겪기도 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공용 공간과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데도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규칙을 지키고 또 지키지 않는 행동은 인물들 사이의 사건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불편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공간을 공유하는 한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성인으로서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 셰어하우스는 새로운 독립의 형태로 받아들여 볼 만한 아이디어다. 대학의 기숙사 역시 2인 1실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있어 외부의 규율이 덜 적용되면서 거실과 주방이라는 공간을 더 적은 인원이 비교적 자유롭게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하지만 학기 중의 학생을 제외한 청년층에게 셰어하우스가 주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한 만큼, 셰어하우스라는 주거 형태는 보편화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시원과 원룸은 이미 포화상태다. 청년들이 치솟는 월세를 내며 좁디 좁은 공간에서 잠만 자느니 차라리 공간을 좀 나눠 쓰더라도 더 넓은 집에서 생활하는 방향의 삶을 택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셰어하우스는 개인에게 독방을 제공하고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식이 아니라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며칠 전 SNS에서 화제가 된 셰어하우스가 그러한 경우다. 최대 8인이 이층 침대를 사용하며 한 방에 거주하는 형태를 과연 셰어하우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형태의 공간에서 공유되는 것은 지식이나 문화, 취향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공유를 지양해야 하는 사생활이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고 1인 가구는 늘어나고 있다.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셰어하우스나 공유주택을 대안 주거 형태로 제시할 수도 있고 실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형태가 게스트하우스를 모델로 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은 지금 여기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에 모든 것을 구겨 넣은 원룸이나 고시원이 아니라면 귀마개를 하고 잠들어야 하는 다인실의 방이 선택지라면, 이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든 청년의 삶은 그저 임시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2030 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일 하고 저축을 하고 절약하며 ‘그뤠잇’으로 가계부를 채워나가도 제힘으로 집을 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내 집 마련에 앞서 취업부터 어렵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소득이 늘어갈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딛고 설 기반도 없는데 도움닫기를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는 청년들의 불안이 그마저도 임시의 잠자리 위에서 악몽처럼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들의 삶을 임시로 만들고 있는가. 왜, 그리고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청년들에게 자기만의 집은 커녕 자기만의 방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가. 방황과 시행착오의 자유는 잃은 지 오래고,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없이 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미래를 착취하여 오늘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고 대안이니 공유니 하는 말들로 청년 주거 문제의 해결책을 말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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