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된 고씨 외사촌이 살인청부
“필리핀서 살면 된다” 문자 종용
재산문제 구속 외사촌 추가기소
배우 송선미씨 남편 고모(44)씨는 8월 21일 오전 11시40분쯤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조모(28)씨에게 살해당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조씨는 경찰에서 “외할아버지 재산을 두고 소송전을 벌이던 고씨가 관련 정보를 넘겨주면 10억원을 주기로 했는데, 1,000만원밖에 주지 않아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우발적 살인으로 기우는 듯 했다.
검찰로 넘겨진 사건은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CCTV 분석 결과 초범인 조씨가 한 칼에 고씨를 살해한 점, 백주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 조씨가 고씨를 만난 지 나흘 만에 살해한 점이 그랬다. 무엇보다 범행 후 경찰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현장에서 도주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살인의 배경인 숨진 고씨와 외사촌인 곽모(38)씨 사이에 벌어진 재산 싸움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호텔, 파칭코 운영으로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한 고씨 외할아버지(99)의 국내 700억원대 자산을 두고 민ㆍ형사 소송전을 벌이고 있었다.
청부 살인을 의심한 검찰은 전담 검사를 지정해 서울 서초경찰서와 공조했다. 통상 살인자 주거지 정도만 압수수색하지만, 조씨 주변인까지 대상에 포함해 다수의 휴대폰과 노트북 등을 확보했다.
“홧김에”라는 진술과 달리 청부살인 정황은 점점 뚜렷해졌다. 조씨는 2012년 곽씨와 일본의 한 어학원을 함께 다니며 친분을 맺었고, 지난 5월부터 국내에 있는 곽씨 집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에서 살해 방법을 묻거나 흥신소를 통해 청부살인을 알아보라는 내용도 나왔다. 압수한 컴퓨터에선 ‘사시미’ ‘살인법’ ‘흥신소’ ‘야쿠자 암살방식’ 등이, 살인 사건 후에는 ‘살인교사죄 형량’ ‘우발적 살인’ 등이 검색된 것으로 드러났다.
완강히 버티던 조씨는 곽씨가 다른 혐의로 구속기소되자 흔들렸다. 곽씨는 고씨 외할아버지가 국내 재산을 곽씨에게 주기로 했다는 계약서를 위조한 혐의로 지난 13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곽씨가 조씨 뒤를 봐 줄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며 압박했다.
갈등하던 조씨는 결국 “곽씨가 현금 20억원과 가족부양비, 변호사비를 약속하며 ‘고씨를 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곽씨의 주문대로 흥신소를 통해 ‘조선족 킬러’를 알아봤지만 “중국에서도 청부 살인은 사형감이라 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곽씨는 조씨가 머뭇거리자 “필리핀에 가서 살면 된다”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살해 이행을 종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진동)는 26일 곽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