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는 가장 강력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뿐더러 등판 간격까지 줄여가며 총력전을 벌이기 때문에 대개 투수전으로 흐른다. 하지만 올해 포스트시즌은 각 팀 선발투수들이 무너지며 난타전이 속출했다.
그러나 ‘국가대표 ‘원투펀치’ 양현종(29ㆍKIA)과 장원준(32ㆍ두산)이 한국시리즈를 가을야구다운 모습으로 돌려 놓았다. 양현종은 26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두산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9회까지 탈삼진 11개를 곁들여 4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역투, 1-0 승리에 앞장섰다. 한국시리즈에서 1-0으로 완봉승을 거둔 투수는 양현종이 처음이다. 완봉승은 한국시리즈에서는 10번째, 포스트시즌 통산 21번째다. KIA는 1차전 패배 후 반격의 1승을 올리며 안방 시리즈를 1승1패로 마쳤다. 장원준도 7이닝 동안 4피안타 5볼넷 무실점으로 눈부신 호투를 펼쳤지만 마지막에 웃은 건 양현종이었다.
양현종과 KIA는 이날 배수의 진을 쳤다. 전날 헥터 노에시에 이어 만약 ‘20승 듀오’가 모두 패할 경우 남은 시리즈는 두산 쪽으로 급격히 기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양현종은 8년 전 한국시리즈 때보다 노련미까지 더해 긴장하지 않고 20승(6패)을 올린 정규시즌 때보다 더욱 위력적인 투구를 했다. 최고 148㎞의 직구를 앞세워 6회까지 이렇다 할 위기조차 없이 두산 타선을 무장 해제시켰다. 6회와 7회 각각 1사 2루의 마지막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모두 후속타자를 범타로 요리하며 불을 껐다. 양현종은 8회 삼자범퇴로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가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수 차례 치켜 올려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의도적으로 과한 세리머니로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려 한 것이다.
숨막히는 투수전 끝에 결승점은 다소 허무하게 나왔다. KIA는 0-0으로 맞선 8회말 장원준이 내려가고 함덕주가 올라오자 선두타자 김주찬이 행운의 우익선상 2루타로 기회를 잡았다. 이어 로저 버나디나의 희생번트로 만든 1사 3루. 김태형 두산 감독은 다시 함덕주를 내리고 김강률을 투입해 강수를 띄웠다. 4번 최형우를 사실상 고의4구로 내보내 1사 1ㆍ3루가 됐고 김강률은 5번 나지완을 3루 땅볼로 유도했다. 이 때 홈으로 뛰어들던 3루 주자 김주찬이 협살에 걸렸다. 그런데 김주찬이 3루와 홈을 오가는 사이 두산 포수 양의지가 김주찬을 살려둔 상황에서 3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 김재호에게 송구하는 판단 실수를 했다. 송구를 받은 김재호는 3루로 달려오던 최형우를 먼저 태그 아웃시킨 뒤 김주찬을 잡으려 홈으로 송구했지만, 김주찬의 발은 이미 홈플레이트를 통과한 뒤였다. 양의지는 순간적으로 3루 주자를 먼저 잡고도 김주찬까지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 본헤드플레이였다.
한편 최형우는 4회말 1사 후 장원준의 가운데 몰린 변화구를 받아 쳐 중월 2루타로 연결해 자신이 보유한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2루타 기록을 17개로 늘려 놓았다. 또 한국시리즈 통산 11번째 2루타로 전준호(전 히어로즈)와 최다 2루타 타이를 이뤘다.
챔피언스필드는 이날도 1만9,600석이 매진됐다. 시구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맡았다. 국회의장의 시구는 2001년 이만섭, 2003년 박관용, 2005년 김원기 전 국회의장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두 팀은 하루 쉰 뒤 28일부터 장소를 잠실구장으로 옮겨 3~5차전을 치른다.
광주=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승장 김기태 KIA 감독
보시다시피 우리 양현종이 완봉승을 거뒀다. 감독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멋진 경기를 했다. 마지막에 이대진 투수코치에게 마운드에 올라가서 ‘더 던질 수 있는지 의사를 물어보라’고 했는데, 본인이 자신 있다고 했다더라. 오늘도 타선은 좋지 않았지만 워낙 좋은 투수를 상대하다 보니 그런 듯하다. 오늘 승리를 계기로 타격감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8회 김주찬의 주루는 한 순간에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순간적인 센스가 돋보였다. 2차전 승리로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 팬들의 응원 덕에 개인적으로도 한국시리즈 첫 승을 올렸다.
●패장 김태형 두산 감독
오래간만에 정말 좋은 투수전을 봤다. (장)원준이도 플레이오프 때와 비교하면 훨씬 안정됐다. 양현종도 정말 좋은 공을 던졌다. 8회말 수비는 하나씩 해도 됐을 텐데 조금 욕심을 냈다. 1루 주자가 3루로 뛰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결정적인 실수였지만 괜찮다. 원정에서 1승1패로 선방했고, 홈으로 가서 좋은 경기 하겠다. 함덕주의 체력은 전혀 문제없다. 빗맞은 안타가 나오긴 했지만, 피로를 느끼는 것 같진 않다. 잠실에서 3~5차전을 치르는데, 그때 투수들 컨디션을 봐야겠다. 오늘 양현종 공은 못 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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