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미완의 기획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역사의 시선을 일상(日常)의 구석으로 안내한다. 그의 노트는 건물, 철도, 패션에서 생시몽, 푸리에 등 사상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목록과 촌철살인의 단상으로 가득하지만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눈여겨 본 대목은 일상 그 자체다. 골목이나 상점, 옷과 음식 등 소소한 일상은 우리 삶을 실제로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하루를 합계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인류의 역사서가 될 수 있거니와, 일상과 그 기원을 대상으로 하는 미시사(微視史)는 정치권력의 변동에만 초점을 둔 거시사의 한계를 보충함으로써 인간사를 완성한다. 여기에 일찍이 푸코가 제시한 통치 개념을 결합시키면 일상은 소소함을 벗고 거대 권력이 자신의 지배를 완성하는 공간으로 드러난다. 통치는 통치받는 자가 주조됨으로써 완성된다고 했던가.
소비 일상을 통치하는 대형 마트가 그러하다. 마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친밀한 장터가 아니다. 철학자 신승훈은 정치지리학자 존 애그뉴의 개념을 빌려 장소와 공간을 날렵하게 구별했다(‘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ㆍ위즈덤하우스). 장터가 상품과 함께 인정이 교환되고 의미와 관계가 만들어지는 ‘장소’라면, 마트는 대자본이 소비를 지시하고 독점 이윤을 획득하는 권력의 ‘공간’이다. 거대 자본인 마트는 욕망의 메커니즘에 포획된 소비자를 주조하고 이들에게 노동자를 종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완성한다.
마트 속 상품은 언제나 할인된 가격표를 붙이고 자신을 현란하게 전시한다. 할인된 가격은 유통 마진은 손대지 않은 채 유통 자본이 생산자에게 전가시킨 비용이기 일쑤다. 상품은 사용-가치보다는 기호-가치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오늘날 편리함만을 광고하는 것은 하수다. 소비행위 자체를 통해 행복을 느끼게 하고, 때론 소비자로 하여금 광고에 등장한 유명 연예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식의 감정 조작이 으뜸이다. 마트에서의 소비는 그래서 일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계산대를 겨우 넘고 나서 손에 쥔 영수증이 항상 불필요한 목록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마트 노동자들도 상품과 동일하게 전시된다. 계산원이나 시식을 돕는 이들은 모두 선 채로, 친절 상품으로 진열된다. 실제 감정과는 상관없이 웃는 낯과 공손함으로 소비자의 요구에 실시간 반응해야 한다. ‘고객은 왕’이라는 상징을 상품에 얹어 팔도록 강요되는 이들에게 앉아 쉴 수 있는 짬은 잠시도 허용되지 않는다. 계산대 뒤에 심심찮게 보이는 볼품없는 의자는 2008년 노동부가 벌이다 만 ‘의자 주기 캠페인’이 남긴 거추장스런 잔해일 뿐이다.
앉을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데다 앉은 채로 일할 수 있는 계산대도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 ‘우리 동네 마트액션’ 캠페인을 펼친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를 ‘앉을 수 없는 의자’라 명명했거니와 그마저도 시식이나 시음을 돕는 노동자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하루에 몇 시간을 서서 노동하는지, 화장실은 제때 갈 수 있는지, 초보적인 공식 통계마저 없으니 알 길이 없다.
노동 존중 사회가 화두다. 할 일이 태산이나, 시민의 평범한 삶을 탐욕스런 자본의 지배에서 구출해 의미와 관계가 샘솟는 일상으로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일상이 곧 사회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는 노동자에게 의자와 함께 앉을 권리를 허용하라. 혹자는 소비자의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한다. 앉아 있는 노동자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진상’ 고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리 있어 보이나, 소비자를 왕으로 둔갑시키고 마트 노동자를 대립시켜 자신의 이윤만 고스란히 챙기려는 대형 마트의 속셈을 감안하면, 핵심을 놓치는 주장이다. 게다가 의자 하나 내어 주고 쉴 짬을 허용하는 데 인색할 시민은 아무도 없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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