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연명치료 거부 이해시켜야”
“수의(壽衣)를 입고 관에 누워 지난 날을 반추하는 입관체험을 했는데 살면서 아쉬웠던 일만 기억나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어요. 남은 인생은 지혜롭게 살고, 죽음의 순간은 편안하게 맞기로.”
25일 경기 오산 한신대 평생교육원 경기농협여성리더아카데미에서 ‘웰다잉(Well-dying)' 강의를 들은 봉은자(69)씨는 존엄사를 택하기로 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이날 봉씨와 함께 강의실을 빼곡히 채운 60대 전후의 여성 70여명 중 상당수는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장착, 항암제 투여 등의 진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를 각자의 희망에 따라 작성했다. 강의를 맡은 최영숙(60) 대한웰다잉협회 회장은 “사전의향서 작성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라며 “몸도 마음도 건강할 때 삶과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후, 나의 임종기 의료 방식에 대한 소망을 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씨도 사전의향서를 썼다. 지난 3월부터 웰다잉 강의를 들으며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고민해왔고, 평소에도 자녀들에게 연명치료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봉씨는 “지금은 아픈 곳 없이 건강하지만, 큰 병이 찾아와 현대 의료기술이 필요가 없을 만큼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다면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하고 싶지 않다”며 “대신 가족들이 섭섭하지 않게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면 된다”고 말했다.
역시 사전의향서에 서명한 수강생 민덕기(52)씨는 파킨슨병을 앓는 80대 친정어머니를 모시면서 ‘편안한 죽음’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민씨는 “어제 밤에도 남편과 100세 시대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어머니의 아픈 모습을 함께 지켜보다 보니 수명이 길어진 만큼 삶의 질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며 “죽음이 마지막 이별이라면, 무의미한 치료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첫날인 지난 23일 이미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최 회장은 가족들에게 연명치료 거부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최 회장은 “딸이 ‘엄마가 갑자기 기절해도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는 뜻이냐’고 물어 ‘위기 상황일 때는 꼭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고, 큰 병에 걸려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전문 의료진의 판단이 있을 때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는 “사전의향서 작성은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중 하나로 봐야 한다”며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도리어 삶을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돼 현재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웰다잉은 보통 노년과 죽음, 성공적인 노후와 건강관리법, 이별 준비 등을 다룬다. 그 중 ‘이별 준비’는 본인의 뜻에 따라 장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사전장례의향서, 남겨진 가족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는 유서, 과거를 회상하며 기록하는 자서전 쓰기, 용서와 화해를 통한 관계 정리, 입관 체험을 통해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기 등까지 포괄한다. 최 회장은 “사전의향서는 웰다잉의 일부분일 뿐인 셈”이라고 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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