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본사의 노림수
유럽ㆍ호주 등 사업장 릴레이 철수
생산기지 적어 한국철수 쉽지 않아
미국차 ‘한국수출 장벽’ 제거 노려
지난 20일 제너럴모터스(GM)가 69년간 이어오던 호주 생산공장을 폐쇄했다. GM은 호주 정부가 보조금(연간 1억2,000만달러) 지급을 2013년 대폭 삭감하자, 그 해 12월 홀덴의 현지생산 철수를 선언한 후 단계적으로 생산을 줄였다.
GM은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냉혹한 승부사’로 불린다. 이익이 남지 않는 시장에서 가차 없이 발을 빼기 때문이다. 2013년 당시 175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실적을 보였음에도 호주에서는 생산 중단을 선언해 실행했고, 같은 해 유럽 시장 철수(쉐보레 철수) 선언에 이어 2014년 인도네시아 철수, 2016년 태국ㆍ러시아에서 생산을 중단했다. 올해는 오펠을 매각해 유럽시장에서 완전 철수했고, 인도 공장 2개 중 1개 매각ㆍ시장 철수 등이 진행 중이다. 미국과 중국에 집중하고 미래차 위주로 체질을 바꾼다는 전략아래 전세계에 있는 저수익 사업장과 생산공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제 GM에게 남은 세계 생산기지는 멕시코, 캐나다 등 북미지역과 중국, 한국뿐이다.
한국GM도 GM의 이런 세계시장 전략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GM의 위기는 GM이 유럽과 러시아 사업을 포기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한국GM은 실적 7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데 완성차는 2013년 63만대에서 지난해 42만대로, 반조립제품(CKD)은 같은 기간 118만대에서 66만대로 급감했다. 로이터통신이 “2025년이면 한국GM 생산량이 36만5,000대 수준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미 GM이 다수의 사업장을 정리해 “한국GM 철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연간 20만대에 이르는 국내시장과 함께 한국GM의 독자적 수출물량 등을 감안하면 연간 최소 50만대 이상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자회사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GM이 주요 거점이었던 호주나 인도 등에서 철수한 것은 안정적 판매물량을 확보하지 못해서였다. 한국GM 관계자는 “안정적인 판매물량 외에도 한국GM은 생산과 디자인, 엔지니어링 등 GM그룹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GM이 빠지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GM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GM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GM 회생을 앞세우며 한국 정부에 구조조정 지원과 규제완화를 요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근거다. GM은 2013년에도 소형 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가 안전ㆍ환경규제에 걸리자 생산 중단이라는 카드로 정부를 압박해 2020년까지 유예 혜택을 얻어낸 바 있다.
GM이 요구할 대표적 규제완화 조항은 자동차 안전기준과 환경규제 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미FTA는 미국 완성차 업체의 연간 판매량이 2만5,000대 이하일 경우, 미국 안전 기준만 준수하면 한국 기준과 상관없이 수입을 허용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미국 수출 시 미국 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판매량 제한 조항마저 무력화해 미국 차 한국 수출 제약요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승용차 온실가스 배출허용치와 연비 기준 완화도 GM 등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수차례 요구한 사항이다. 한미 FTA에 따라 지금도 GM, 포드, PCA 등 미국 업체는 국내 시장에서 연간 4,500대 이하를 판매하는 ‘소규모 제작사’(2009년 판매량 적용)로 인정받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국내 기준인 123g/㎞보다 16% 완화된 142g/㎞을 적용받고 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완화 기준이 8%로 강화되고 소규모 제작사 기준 연도수도 변화된다.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은 2020년에도 113g/㎞이어서, 한국 기준(97g/㎞ㆍ소규모 제작사 적용 시 105g/㎞)을 맞추려면 별도 배출저감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국내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 업체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으며,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GM이 성능 개선 노력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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