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원자력학회에 참석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하고 인도네시아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포함한 다양한 연구자들과도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질문을 했다. “왜 한국은 원자력발전을 그만두려 하는가?”
1970년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원자력기술 도입에 온 힘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경제사정은 우리 보다 훨씬 나았다. 인도네시아의 여러 곳에 연구용 원자로가 들어섰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 40여년간 원자력을 마지막 옵션으로 생각했다. 원자력발전이 주는 혜택에는 주목했지만 국민적 합의를 위한 정치적 부담을 지기 싫어했던 결과는 산업과 기술발전에서 두 나라간 큰 격차를 가져왔다. 한국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을 때 그들은 풍부한 천연자원 덕에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사이, 1,700개 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는 물과 전기의 만성적 부족에 시달렸다. 이제 그들도 마지막 옵션이라는 원자력발전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
원자력에 관해 도전적이지 못했던 인도네시아는 천연자원 덕에 이럭저럭 지내왔다. 반면 천연자원에 기대지 못했던 한국은 원자력을 도입하고 기술자립을 통해 고도화 했고, 이 나라에도 공급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 결국 자연이 주는 혜택을 치열하게 연구해 이용한 한국은 원자력발전소와 기술 수출이 가능한 빅3에 올라섰지만, 국민적 합의의 어려움과 미지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던 인도네시아는 이제야 마지막 옵션을 떠 올리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수송기를 자체 생산해 한국에 판매할 정도로 일부 과학기술분야에선 첨단을 달리고 있다. 풍력발전소와 태양광 발전단지를 도서 지방에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려는 시도를 했고,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역에 지열발전소도 건설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그들에게 풍족한 전기와 물을 공급하지는 못했다. 원자력발전은 그들의 40년 전기에너지 생산 여정의 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2017년 10월 만난 그들은 한국을 아주 의아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수출이 가능하고, 미국과 유럽으로부터도 기술력을 인정받는 원자력발전기술을 사장하려는 정부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하는 통에 표준답안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한국의 원자력발전기술 자립과정은 신의 한 수였다.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역량을 결집해 얻은 결과였다.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결정도 있었고, 두려움 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던 과학기술계의 분위기도 상승작용을 돕는데 역할을 했다. 결코 거저 얻은 기술이 아니다. 필자도 지난 33년간을 원자력만 생각하며 살았다.
원자력발전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인도네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원자력기술은 지난 40년간 국민적 합의의 어려움을 이유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 만일 그들이 우리와 같은 시작점에 있었을 때 우리와 같은 절실함이 있었다면 오늘날 인도네시아 과학기술 수준은 우리를 훨씬 능가했을 것이다. 모든 전공분야가 통합되고 융합돼야 개발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기술의 특성이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수준을 끌어 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원자력을 둘러싼 40년의 성공과 좌절의 양국 역사가 뒤바뀌려고 하고 있다. 몹시 두렵고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탄스럽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여기서 하강하지 않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40년 동안 안전하고 값싼 전기를 풍족하게 공급한 원자력발전이 왜 이러한 혼란과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는가? 국민 공론화를 통해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이미 밝혀졌다. 일본의 혹독했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도 원자력에 의한 직접 사망자는 없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이다. 만일 이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다행히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터득할수록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다스렸고 두려움은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이 경외감은 열렬한 탐구심으로 타올라 결국 인간은 새로움을 지속적으로 찾아냈다. 자연이 깊숙이 감추어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공부해 찾아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수렵과 채집의 시대를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950년대 세계적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에게는 평화와 안락한 생활에 대한 무한한 갈망이 생겼다. 그 결과물이 원자력발전이다. 이미 두려움을 탐구심으로 바꾼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편안하게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40년의 시간이 지났으며 원자력발전은 국가의 산업발전에 기둥역할을 했다. 그런 우리가 왜 이 시점에 이 기술을 접는 것을 결정해야 하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40년 전 원자력발전을 선택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도 마지막 옵션으로 생각했던 원자력발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정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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