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 근절 윤리준칙 도입
공정위 직원, 대기업임원 등 만나면
5일 안에 면담 상세내용 보고해야
경조사ㆍ토론회 등은 예외로 허용
청와대 등 간섭 막을 방안도 없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10일까지 김앤장 직원 406명(연인원 기준)이 정부세종청사의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조사관이나 상임위원 등에게 피심인(기업) 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방문이다.
토ㆍ일요일을 빼고 보면 김앤장 직원이 매일 두 명 이상 꼬박꼬박 공정위를 찾아오는 셈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직원도 118명이나 공정위를 방문했다. 이들 대형 로펌에는 공정위 출신 퇴직자(OB) 수십여명이 고문 등의 형태로 일한다. 지금은 청사관리소 출입자 통계로만 잡혀, 공정위 직원과 방문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대형 로펌이 공정위 OB를 지렛대로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공정위가 전관예우와 대형로펌 로비 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청사에 출입하는 민간인에 대해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공정위 직원들은 ‘등록된 외부인’만 만날 수 있고, 외부인 접촉 시엔 상세면담 내역을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정부에서 이런 규제를 도입한 첫 사례”라고 자평하지만, 우회통로로 이용될 수 있는 길을 일부 열어두는 등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는 24일 “공정위 직원과 외부인의 접촉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며 ‘외부인 출입ㆍ접촉 관리방안 및 윤리준칙’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안에 따르면 앞으로 ▦법무법인 변호사 ▦대기업 임직원 ▦공정위 OB 등이 공정위를 방문하려면 인적사항 및 업무 내역 등을 공정위에 사전 등록해야 한다. 등록은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이번 윤리준칙 시행에 따라, 공정위 직원들은 이 등록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외부인을 청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접촉할 수 없다. 이름을 올린 외부인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5일 안에 면담 상세내용을 감사담당관실로 보고해야 한다. 등록명부에 이름을 올린 외부인도 윤리준칙을 준수해야 한다. 외부인은 ▦사건 청탁 ▦업무상 비밀 유출 ▦약속되지 않은 공정위 직원과의 면담 등을 할 수 없다.
정부부처가 이런 형태의 외부인 출입ㆍ접촉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등록대상 외부인은 400~500명 정도로 예상한다”며 “부정행위가 갈수록 음성화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정위 나름대로는 상당히 파격적 방식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로펌이나 대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은 허점으로 지적된다. 공정위는 “경조사, 토론회, 세미나, 교육프로그램 등 사회상규상 허용되는 범위의 접촉에 대해 예외를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공정위 국정감사에서는 공정위 현직 직원과 공정위 출신 로펌 직원이 대기업 임직원과 함께 3개월간 같은 조에 속해 외부교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에 바뀐 규정으로도 이 같은 관행은 해소할 수 없는 셈이다. 또 이번 조치로 민간 ‘외부자들’에 대한 통제는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로부터의 간섭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없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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