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ㆍ어린이집 핼러윈 파티에
스파이더맨 복장ㆍ엘사 드레스…
“우리 애만 기죽을라” 비싸도 구입
“의미 모를 외국문화에 지갑 털려”
여섯 살 딸을 둔 회사원 김모(37)씨는 지난주 거금 15만원을 들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 드레스 세트를 주문했다. 이번 주 유치원에서 열리는 핼러윈(Halloween) 파티에 딸아이가 입고 갈 옷이다. 세트에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정품 드레스와 망토는 물론 불빛이 들어오는 투명 구두와 왕관, 긴 금발 가발이 포함돼 있었다. 하루 행사에 너무 과한 지출 아니냐는 지적에 김씨는 “한 달 생활비에 비해 과하게 비싼 건 사실이지만 이왕이면 내 아이가 제일 예쁘고 화려한 옷을 입어 기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샀다”고 털어놨다.
매년 10월 31일 핼러윈을 1주일 가량 앞두고 일부 부모들의 극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아이들이 유령이나 특정 캐릭터 분장을 하고 이웃을 돌면서 사탕을 얻는 미국 핼러윈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정착이 돼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필수 행사’. ‘누구보다 내 아이가 예뻐야 한다’는 욕심을 내세우면서 수십만원 비용을 서슴없이 치르는 부모가 점차 늘어나면서 핼러윈이 ‘부모 재력 과시의 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핼러윈이라는 단 하루 축제를 위해 부모들이 투자하는 돈은 생각 이상이다. 몇천원대 간단한 것도 있지만 의상 세트 등은 몇십만원을 줘야 하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집에서 아이 유치원 친구들을 모아 핼러윈 파티를 열어주기로 한 이모(40)씨는 집안 장식과 음식 준비에만 벌써 6만원 가량 썼다. 아이가 입을 ‘스파이더맨’ 복장과 아이들에게 핼러윈 영화를 틀어주기 위해 구입한 빔 프로젝터까지 합하면 2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이씨는 “부모 순서대로 행사가 돌아가는 탓에 거부할 수도 없었다”면서 “의미도 모를 외국 문화 때문에 유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부모들 간 경쟁이 벌어진다는 데 있다. 다섯 살 딸이 있는 전모(39)씨는 매주 다니는 영어마을에서 지난주 연 핼러윈 행사를 위해 1주일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 ‘공주 드레스’를 세 종류나 준비하고, 각 옷에 맞는 머리 모양을 연출하는 방법과 쿠키 굽는 법을 틈틈이 인터넷으로 배운 것. 전씨는 “다른 엄마들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해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더 비싸고 좋은 옷을 입힐수록,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정성을 보일수록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진다는 얘기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정작 아이는 엄마의 극성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소외되는 일부 아이들과 지갑을 쉽게 열수 없는 부모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지난해까지 어린이집에서 근무했던 이모(29)씨는 “핼러윈 행사가 열리면 한 반에서 한두 명 정도는 빈손으로 온다”면서 “서로 얼마나 예쁜 옷을 입었는지 자랑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무 것도 준비해오지 못해 울음을 터뜨린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밸런타인데이처럼 외국 문화가 무분별하게 전해지면서 상업적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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