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선거(22일)에서 압승을 거두고 민생안정과 함께 최우선 과제로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위한 개헌을 내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앞길이 평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개헌 시기에 대한 목소리가 천차만별이고, 아베의 장기집권계획에 대한 차기주자들의 볼멘소리도 들려온다. 한반도 위기에 편승한 안보 강화를 주장하며 내년 중 개헌을 이뤄내고 이를 장기집권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아베 총리의 계획이 예상만큼 순조롭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24일 공개된 아사히(朝日)신문과 도쿄대 다니구치 마사키 연구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의원 당선자(465명 중 453명 응답) 가운데 65%가 ‘헌법개정 시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밝혀 주목을 끈다. 이는 2020년 신헌법 시행 방침을 밝힌 아베 총리의 ‘절박성’과는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사실상 내년 안에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절차를 돌파해야 하는 아베 총리로선 개헌세력 내에서도 제각각인 목소리를 통합해 끌고 나가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인 것이다.
이 조사에선 일단 중의원 당선자 82%가 개헌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 97%, 공명당 86%, 희망의당 88%의 당선자가 찬성했으며 일본유신회는 당선자 100%가 동의했다. 공산당과 사민당 당선자는 전원이 개헌에 반대했다. 제1야당이 된 입헌민주당에선 반대가 58%로 나타났지만 찬성 의견도 25%나 나왔다. 여야 상관없이 개헌파가 선거 후 늘어난 결과다.
그럼에도 적절한 개헌 시기에 대해 ‘중의원 임기 중’(2021년 10월까지)과 ‘언제라도 괜찮다’는 사례를 제시하며 질문한 결과, 자민당 내에서도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답변이 56%로 ‘임기 중’(44%)보다 많았다. 공명당과 입헌민주당 당선자의 경우 전원이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고, 희망의당 당선자들도 90%가 같은 의견이었다. 더욱이 고쳐야 할 헌법의 항목에 대해선 자민당이 ‘전쟁포기와 자위대’, 공명당은 ‘긴급사태조항’, 입헌민주당과 희망의당은 ‘중의원 해산’으로 제각각이었다. 아베 총리가 제안한 ‘9조에 자위대 명기’는 자민당 74%가 찬성했지만 공명당 쪽은 54%가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해 연립여당 내 시각차가 분명히 드러났다.
공명당의 견제는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23일 확정된 연립유지 합의문서에 “개헌을 지향한다”는 내용을 넣으려던 자민당에 제동을 걸면서 “개헌합의 형성에 노력한다”는 표현으로 바꿔놓았다. 2012년과 2014년 총선 뒤 합의문에 “헌법심사회 심의를 촉진한다”고 돼있던 부분도 “중ㆍ참의원 헌법심사회”로 이번에 수정됐다. 자민당이 양보한 것은 중의원과 달리 참의원은 공명당 25석이 없을 경우 개헌세력 3분의 2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5석이 감소한 공명당으로선 헌법 9조 개정에 신중한 당 지지 조직 내 여론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평화헌법에 손을 대는 것은 국제 여론의 비판도 돌파해내야 해 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강한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와 개헌 이슈가 직결된 이유다. 다만 총선압승에 따라 아베의 3연임 대세론은 당분간 강화될 분위기다. 하지만 차기 주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의원은 23일 총재선거 도전을 재확인하며 “야당이 흩어져서 자민당이 강한 것이다. (국민)신임을 받았다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라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역시 내년 자민당 총재선거 도전을 앞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장관도 24일 기자들을 만나 “총선 승리가 아베 총리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라며 아베의 독주에 견제구를 던졌다. 일본 매체들도 “개헌 국민투표는 절반을 넘겨야 하는 싸움” “아베 총리가 내년 총재선거까지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끄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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