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북한과…” 조건 제시
협상 의지 구체적 표출 이례적
강연선 “미국과 대화하고 있다” 언급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이 미국이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과의 공존(coexist with nuclear DPRK)을 택할 경우 대화에 나설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24일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20~2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비확산 회의’에 참석한 최 국장은 공개 세션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지속되는 한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핵보유국으로서의 북한과 공존하는 올바른 선택을 취한다면 출구(way out)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국장의 발언은 핵보유국 지위를 먼저 획득한 다음 미국과 협상에 나서겠다는 기존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만 고위 관료가 공개 석상에서 ‘핵보유국인 북한과의 공존’이나 '출구’ 등 북핵문제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최 국장은 비확산 회의에 이어 23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가진 강연에서 “미국과 대화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고 일본 TV아사히가 보도했다. 최 국장의 언급은 “북한과 2~3개 대화 채널을 열어 뒀다”고 밝힌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지난달 30일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북한도 협상 국면으로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를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부터 북한 도발 부재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대화 모멘텀을 만들어 낼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최 국장의 발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한 다음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도도 함께 깔려 있는 것”이라며 결국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추가적인 전략도발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북측이 남측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됐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의 당시 진행중이던) 한미합동해상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대비하고 있었는데, 최 국장은 한미훈련 대신 미국의 훈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의도적이었다”고 전했다. 문재인정부가 남북대화 의지를 적극 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는 모습이 국제회의 석상을 통해 드러나는 데 대해 북한도 외교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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