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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아버지와 함께 춤을

입력
2017.10.24 16:1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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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떠올리는 시간이 근래 꽤 늘었다. 세상을 등지신 지 20년 가까이 되어 거의 가뭇해진 당신에 대한 기억이 먼지를 턴 듯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일부러 묻어 둔 속내가 들춰진 것 마냥 쿵하는 진동 또한 수시로 가슴을 파고든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워낙 가부장적이셨고 당신의 바깥일에만 열과 성을 다하신 나머지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한 경제적 기여는 거의 없으셨다. 5남매 중 유독 내게 엄하셨던 탓에 굉장히 높아 다가서기 어려운 ‘넘사벽’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손을 붙잡거나 품에 안겼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잘 보이려고 몇 번이나 애를 썼지만 늘 꾸중만 들었던 기억이 아프게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놓으면 대부분 “우리 세대 아버지들이 다 그렇지 뭘 그걸 가지고 징징거리냐”는 위안 아닌 충고에 공연히 더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뒤늦게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나의 내면에 드리운 어떤 불안감의 원인이 아버지일 수 있다는 정신분석적 의견을 들었을 땐 눈물콧물로 뒤범벅되기도 했다. 원망이 더 많았던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자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보며 어인 연유일까 싶기도 하다.

지난 추석연휴에 가족과 더불어 한 섬나라로 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세 식구의 첫 해외여행인 것은 물론 다섯 시간이 넘는 비행을 잘 견뎌낸 딸아이의 재롱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더 깊이 채워내는 귀한 시간이었다. 때마침 그곳에서 맞은 딸아이의 만 두 살 생일날 저녁 아내는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해변에서 아이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생일축하 노래와 여러 동요를 연이어 부르는 아내를 따라 어린 딸은 잔뜩 신이 나서 깡총깡총 모래사장 위를 뛰어다녔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다가 뭉클해지는가 싶더니 문득 팝송 하나가 떠올랐다. 알앤비 가수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가 어린 시절 일찍 숨을 거둔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며 만들었다는 ‘댄스 위드 마이 파더’(Dance with my Father)라는 곡이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가끔 찾아 듣곤 했는데 모녀의 춤사위를 보au 갑작스레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노래 가사 중 ‘다시 아버지와 춤을 출 수 있다면 난 결코 끝나지 않을 노래를 부를 거예요’라는 부분이 특히 가슴에 울렸다. 아내와 딸의 행복한 몸짓 안에서 아버지를 향해 쌓여있던 원망 섞인 심정이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이어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묵직하게 북받쳐 올랐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어느 순간부터 부모에게 사랑을 말하고, 또 부모의 사랑에 자신을 물들이기 시작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어느새 아버지가 되어 있는 나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된다. 사랑의 표현방식이 달랐을 뿐 어찌 보면 아버지도 당신의 방식으로 나를 품으셨던 날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망실된 기억 저편에 잘 자리하고 있으리라.

가끔 딸아이의 손을 붙들고 내 발등에 아이의 작은 발을 얹혀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엉기적엉기적 춤을 추곤 한다. 더 이상 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춤출 길은 없지만 내 아이와 손을 맞잡고 몸을 흔드는 늦은 오후의 집안 풍경에서 작지만 커다란 평화를 느낀다. 오히려 집 바깥에서 고단한 이들을 품어 아끼셨을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내 아내와 딸을 더없이 사랑하고 싶다. 올해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

임종진 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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