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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포커스] 원더걸스 예은의 '밤'

입력
2017.10.2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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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원더걸스 해체 후 최근 첫 솔로 앨범을 낸 예은은 "원더걸스로 낮의 즐거움을 노래했다면, 핫펠트로선 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메바컬쳐 제공
그룹 원더걸스 해체 후 최근 첫 솔로 앨범을 낸 예은은 "원더걸스로 낮의 즐거움을 노래했다면, 핫펠트로선 밤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메바컬쳐 제공

“해진 뒤” 예은이 신은 ‘새 신발’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리면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할 수 없는 때가 온다. 프랑스에서 오후 5~6시를 가리킬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낮과 밤이 뒤섞인 미묘한 시간의 경계. 이 마법 같은 시간을 가수 예은(핫펠트ㆍ28)은 솔로 앨범 ‘마이네’의 콘셉트로 잡았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비슷해서다.

예은은 2007년 원더걸스 원년 멤버로 데뷔했다. 연습생 생활 2년 만에 신데렐라처럼 얻은 행운이었다. 예은은 ‘찌르기춤’(‘텔미’)과 ‘총알춤’(‘노바디’)을 추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10년 동안 화려하게 무대를 누볐다. 빛나고 친근했던 ‘개의 시간’이었다.

예은은 지난 1월 과도기를 맞았다. 원더걸스는 해체했고, 예은은 JYP엔터테인먼트(JYP)를 떠나 흑인 음악 레이블인 아메바컬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주류 음악 시장에서 섹시한 원피스를 입고 춤을 췄던 여성 아이돌의 파격 행보였다.

아이돌로서 누리던 축제는 끝났다. 홀로서기에 나선 예은은 낯선 ‘늑대의 시간’을 마주했다. 자연스럽게 앨범 분위기도 차분해졌다. 이달 중순 공개된 타이틀곡 ‘새 신발’을 듣다 보면 석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전자기타 소리가 홀로 아련하게 울려 퍼지면, 비트가 쓸쓸하고 천천히 그 소리를 그림자처럼 따라 온다.

“어울리긴 해도 아직 어색해요.” 예은은 ‘새 신발’에서 새 신발을 모티프로 자신의 새 출발을 조심스럽게 노래한다. 새 신발에 길이 들기까진 시간이 필요한 법. 예은은 “언젠간 편해질 거야”라며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전자댄스음악(EDM)이 아닌 만큼, 그의 새 앨범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지는 않다. 불안할 수 있는 시기, 그는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아이돌과 3대 가요 기획사 출신이란 껍질을 벗고 여성 음악가로서 자신을 편하게 마주 본 성장”(김윤하 음악평론가)이 느껴진다.

“(원더걸스로) 가장 빛나는 곳에 있었고 해가 지는 시간이 됐죠. 밤이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요. 별이 빛나는 시간이니까요.”(예은)

예은의 솔로 앨범 '마이네' 재킷 사진. 어려서 예은의 별명이 '빨간머리 옌'이었다. 아메바컬쳐 제공
예은의 솔로 앨범 '마이네' 재킷 사진. 어려서 예은의 별명이 '빨간머리 옌'이었다. 아메바컬쳐 제공

보는 대신 ‘읽어 달라’는 여성 아이돌

원더걸스 시절 멤버인 선미가 여름과 닮았다면, 예은은 가을 같았다. 선미가 ‘보름달’(2014)을 부르며 맨발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뜨겁게 유혹할 때, 예은은 같은 해 낸 앨범 제목 ‘미?’에서 엿볼 수 있듯 자신의 동굴로 파고들어 정체성 혼란을 노래했다.

예은이 홀로서기의 첫 발로 선택한 길은 원더걸스에 가려진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예은이 독일어로 ‘나의’란 뜻의 ‘Meine’를 앨범 제목으로 정한 이유다. 아메바컬쳐에 따르면 예은의 새 앨범 재킷 사진은 예은의 조카가 빨간색 가발을 쓰고 찍었다. 실제 ‘빨간 머리 옌(예은)’으로 불렸던 그의 열두 살 때를 표현했다.

예은은 또 다른 노래 ‘나란 책’에서 자신의 얘기를 가감 없이 꺼냈다. ‘열두 살 매일 뭔가 부서지던 집’이라며 데뷔 전 청소년 때의 방황을 되돌아보고 ‘열여덟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라며 원더걸스 데뷔 시절 부담까지 털어놓는다. 음악으로 소비되고 싶은 바람은 간절하다. 예은은 “표지만 힐끗 볼 뿐이잖아. 읽어주면 좋을 텐데”라고 읊조린다. 화려한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걸그룹(원더걸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 언어로 자립하고 싶은 ‘포스트 아이돌’로서의 욕망이다. 예은은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의 부제를 나를 읽어달라는 뜻의 ‘리드 미’로 붙였다.

곡에 매캐함이 물씬… 싱어송라이터로의 성장통

예은은 홀로 활동할 때 본명 대신 예명인 핫펠트(HA:TFELT)를 앞세운다. 뜨겁다는 뜻의 영어 단어 ‘Hot’과 진심 어린이란 뜻의 ‘Heartfelt’를 합성해 열정적으로 진심이 담긴 음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예은은 왼손 손톱 밑에 활동명 일부인 ‘FELT’를 차례로 새겼다.

JYP가 아닌 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자유롭게 선보이고 싶었던 예은은 새 앨범을 내고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다. 예은은 ‘새 신발’ 뮤직비디오에서 새로 산 듯한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도 핫펠트로서의 앞길에 ‘꽃길’만 펼쳐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아는 눈치다. 대중적인 댄스 음악에서 1960~70년대 풍 복고 밴드 음악을 거쳐 리듬앤블루스(R&B)까지. “예은이 만든 곡엔 특유의 매캐함이 있고, 주류 시장에서 여가수로는 드물게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의 곡을 주로 써”(미묘 음악평론가) 싱어송라이터로의 색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음악적 여행을 해 온 예은의 컴퓨터에는 새 앨범에 미처 싣지 못한 미공개 곡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예은은 조만간 신곡을 공개한다. 요즘 유독 “밤의 외로움”에 끌린다는 그는 어떤 ‘새 신발’을 신고 돌아올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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