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서울대병원 등 전국 10개 대형병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해졌다. 내년 2월 모든 의료기관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에 들어간 것이다. 대법원이 2009년 식물인간 환자의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요구한 ‘세브란스 할머니 사건’에서 환자 본인의 뜻을 직ㆍ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를 중단해도 괜찮다고 판결, 법 시행 이전에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었다.
임종기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공호흡기 등 기계를 달고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다가 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가족과 의료진은 임종기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받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삶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오래 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국민 72.3%, 2013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선 65세 이상 노인 88.9%가 연명치료에 반대했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한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한 것은 의미가 크지만, 본격적 시행에 앞서 세부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존엄사법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낮아 의료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우려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3~4월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일반인 84.4%, 의료진 66.4%가 존엄사법이 시행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보건당국의 적극적인 사전 홍보가 요구되는 근거다.
연명치료 중단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의사 2명이 임종기 환자의 뜻을 확인하거나 가족 전원의 합의를 토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독거노인, 무연고자 등 가족이 없거나 임종기 환자 가족이 해외에 체류할 경우 연명치료 중단이 어려울 수 있다. 현재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간 말기 환자는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통증완화치료만 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년 2월부터는 본인이나 가족 동의 절차를 추가로 밟아야 해 더 번거롭게 됐다.
환자 가족이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본인 의사와 무관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우려된다. 정부는 시범사업 기간 동안 세심한 점검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하고, 존엄사법이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의사 판단의 적정성을 철저히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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