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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격리된 공론화에서 사회적 공론화로

입력
2017.10.23 16: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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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문 대통령이 신고리 5ㆍ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사 재개 여부를 공론조사에 맡기자고 제안하면서 촉발된 원전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의 입장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전재개 쪽으로 수렴되었고 정부는 신속하게 공사재개 권고안을 수용했다. 첨예한 갈등이 예고된 사안이었음에도 시민참여단이 학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수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신고리 공론조사가 새로운 갈등관리 모델로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정부의 역할이었다. 정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권고안에 승복하고, 공론화 과정에 정치적 개입을 자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미 9월 16일 1차 조사에서 건설 재개 의견이 우세했다. 공론화위원회에서 각별히 보안에 신경을 썼겠지만 청와대가 당시 시민참여단의 기류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의 힘을 활용하여 개입할 유혹이 적지 않았을 터다. 그럼에도 정한 룰에 승복하는 전례를 만든 것은 이번 공론화 실험을 가장 빛나게 한 대목이다.

신고리 5ㆍ6호기 중단 공론화 과정이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장이었다는 의미도 크다. 대중은 오피니언 리더들과 달리 전문적인 정보들을 수용할 능력이 부족하고, 정치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존재라는 불신이 어느 사회든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공론조사에 참여했던 시민참여단은 양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토론해나가는 ‘숙의(熟議)’과정 자체를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각종 인터뷰들을 보면,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하고, 승복하는” 참여와 숙의의 과정에 참여한 자부심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471명에 불과한 작은 샘플이지만 시민 역량에 대한 신뢰와 숙의의 위력을 입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실험이 남긴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 과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하는 의회와 정당의 역할은 오히려 배제된 양상이었다. 공론조사의 의미를 권고안으로 조정하기는 했지만, 공론조사에 정부 입장이 위임된 조건에서 다른 쟁점이라면 있을 법한 최소한의 정치권 논쟁과 시민 설득 작업은 오히려 유예되었다. 언론 역시 다른 쟁점들 같으면 각종 특집이나 기획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공론 형성에 나섰을 법하다. 더구나 공론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시민참여단에게 제공된 정보나 토론과정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왜 공사재개 쪽으로 쏠렸는지,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정보는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시민참여단이 느꼈다고 하는 자부심과 감동이 나의 것은 되지 못한다.

한 달 사이 크게 공사 재개로 쏠린 공론조사 결과와 달리 일반 여론조사 결과들에서는 커다란 변동이 없었던 것은 ‘격리된 공론화’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시사한다. 미디어나 정치권의 찬반 논쟁이 심화되고, 언론의 충실한 보도가 이루어지면, 일반 여론조사 결과도 따라 변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 무상급식 논란이나 복지 노선에 대한 논쟁 속에서의 여론변화를 생각해 보라.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일반 여론의 변동이 없었다는 것은 시민참여단 밖의 시민들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공론조사는 시민들의 숙의에 기반한 갈등해결에 유용한 방법론임이 확인됐다. 주요 의사결정과정에서 전 사회적 공론화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되길 기대한다. 풀어야 할 과제도 드러났다. 정부는 결과에 대한 승복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과 전체 시민의 공론화에 기여하는 진전된 공론화 모델로 발전시켜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당장은 시민참여단이 체감한 자부심과 감동을 의회와 전체 시민의 자부심과 감동으로 만들 제2의 공론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정한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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