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소끼리 비번 공유
사생활 침해ㆍ범죄 표적도
지난해 이사를 가기 위해 공인중개업소에 원룸을 내놓은 대학원생 박모(26)씨는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외출 전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소리를 들은 것. 놀란 서씨가 “누구냐”고 소리지르자 상대는 “부동산에서 왔는데 문을 두드려도 답이 없길래 손님들 데리고 들어왔다”며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서씨는 “대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순간적으로 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서씨는 결국 중개업소를 거치지 않고 집을 거래했다.
집을 거래하면서 상호 간 편하다는 이유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관행이 종종 사생활 침해 논란에, 절도 등 불미스런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거주자에게 미리 연락하지 않고 방문하거나, 매물로 나온 집 비밀번호를 중개업소끼리 공유하는 사례까지 있어 거주자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생활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지난해엔 경기 고양시 소재 오피스텔에 들어가 금품 200만원 상당을 훔친 김모(26)씨가 붙잡혔는데, 조사 결과 김씨는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니며 몰래 본 비밀번호를 외웠다가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과거 비슷한 수법으로 절도를 해 징역형을 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혼자 사는 여성이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불편을 감수하고 보안을 위해 차선책을 선택한다. 집에 있을 때만 방문케 하거나 비밀번호를 수시로 바꾸는 식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50)씨는 “초등학생 아이들끼리만 집에 있는 경우가 있어 어른들이 집에 있는 일요일에만 방문하도록 얘기를 해뒀다”고 말했다. 대학생 양모(24)씨는 “미리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에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돌아간 뒤 바로 바꾼다”고 했다.
중개업소는 “거래를 빨리 성사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님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언제든 집을 볼 수 있어야 계약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서울 동작구 공인중개사는 “낮 시간에 거주자가 바로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동의를 얻은 뒤 비밀번호를 받아놓는다”라면서 “중개업소를 통해 집을 거래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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