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타임슬립’이다. 진부한 로맨틱코미디 소재의 드라마라 애초 기대도 적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다르다. 1990년대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독박 육아’ 등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는 이야기로 첫 방송부터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13일 첫 방송한 KBS2 드라마 ‘고백부부’ 얘기다.
‘고백부부’는 14일 2화 시청률 6%(닐슨코리아 기준)를 달성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총파업 이후 방송파행으로 공영방송의 평균 시청률이 떨어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출발이 좋다. KBS2 드라마 ‘너를 기억해’(2015), MBC ‘한번 더 해피엔딩’(2016) 등 저조한 시청률로 한동안 부진하던 배우 장나라도 한숨 돌리게 됐다.
2001년 가수로 데뷔한 장나라는 2000년대 초반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이며 배우로 거듭났다. 귀여운 동안 외모에 연기력까지 갖춰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잘 어울렸다. 2002년 CF에서 “안정환 오빠 한 골만 더 부탁해요”라며 애교를 부리던 앳된 그녀가 38세 억척 아줌마가 되기까지, 안방극장의 단골 주인공 장나라의 대표작들을 돌아봤다.
1. SBS ‘명랑소녀 성공기’(2002)
데뷔곡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로 인지도를 쌓아가던 장나라를 스타로 만든 드라마다. 내세울 것 없는 가난한 여주인공이 갖은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멋진 도시남자 한기태(장혁)와 사랑도 이루는 내용이다. 정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비튼 설정으로 호평 받았는데, 이를테면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주인공이 여군 부사관으로 군 입대를 하고 남자주인공이 울면서 배웅하는 장면이 고정관념을 깨며 웃음을 끌어냈다.
주인공 차양순은 살아있는 뱀과 닭을 맨손으로 휘어잡는 털털한 충청도 시골소녀다. 제작진은 애초 차양순 역으로 배우 김희선을 낙점했으나 무산됐고, 캐스팅 2순위였던 손예진도 영화 ‘연애소설’ 촬영 일정으로 거절 당했다. 결국 대체 배우로 투입된 인물이 당시 10대들 사이에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장나라였다.
귀여운 외모의 장나라가 구수한 사투리를 써가며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치니 시청자에겐 꽤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 듯하다. SBS ‘명랑소녀 성공기’는 시청률 40%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어 장나라는 그해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종영 후 10여개가 넘는 광고를 찍어 그는 중장년 층까지 넓은 팬층을 보유하게 됐다.
2. MBC ‘뉴논스톱’ (2002)
MBC 드라마 ‘논스톱’은 캠퍼스 생활을 즐기는 대학생들의 일상과 사랑을 그린 시트콤이다. 2000년에 첫 방송해 2005년 시즌 5까지 방영됐다. 장나라는 2001년 앨범 활동을 이유로 하차한 가수 겸 배우 이재은 대신 시즌2였던 ‘뉴 논스톱’에 중간 투입됐다. 극 초반엔 정제되지 않은 역할로 연기력을 지적 받기도 했으나, 극 중반 어리바리하면서도 순수한 여대생 캐릭터가 자리잡으면서 인기를 끌게 됐다. 특히 가수 겸 배우 양동근과의 러브라인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늘 장난기 많은 양동근에게 당하면서도 그를 짝사랑하는 지고지순한 모습이 20대 여성들의 공감을 샀다.
극중 장나라를 좋아하게 된 양동근이 군 입대를 하며 장나라에게 고백하고 장나라가 가수의 꿈을 이루면서 ‘뉴논스톱’은 막을 내린다. 두 사람은 이후 ‘논스톱’ 시즌3에 특별출연해 커플 연기를 선보여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3. MBC ‘내사랑 팥쥐’(2002)
이번엔 알바생이다. 전직 유치원 교사인 양송이(장나라)는 괜한 사건에 휘말려 해고된 뒤 놀이동산에서 탈인형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평범한 외모를 지닌 양송이는 샘이 많고 무뚝뚝하다. 그는 착하고 예쁜 친구 희원이를 늘 노골적으로 구박해 놀이공원 안에서도 심술쟁이로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악녀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놀이공원을 소유하고 있는 대경물산의 장남 강승준(김재원)과 놀이공원 동물팀의 물개 조련사 김현성(김래원)이 묘하게 양송이에게 끌려가며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내사랑 팥쥐’는 ‘명랑소녀 성공기’에 비하면 시청률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OST였던 장나라의 ‘스윗 드림’이 히트해 오래도록 회자됐다. ‘스윗 드림’은 2002년 장나라의 정규 2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발매됐는데, 수록곡까지 음원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그는 그해 연말 MBC와 KBS에서 가수 보아를 꺾고 가요대상을 차지했다. 당시 신인가수가 가요대상을 받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4. KBS2 ‘동안미녀’
2002년 성공의 맛을 본 장나라는 그 다음해 활동 무대를 중국으로 옮겼다. MBC ‘사랑을 할꺼야’(2004), KBS2 ‘웨딩(2005) 등 국내 드라마에도 종종 얼굴을 비췄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007~2008년 가수 활동에 집중하고 이후 중국으로 떠나면서 한동안 방송계에선 공백기를 가졌다.
2011년 6년 만에 컴백한 KBS2 ‘동안미녀’에서는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디자이너로 취직한 34살의 노처녀 이소영역으로 귀여운 이미지를 벗었다. 자극적인 설정 없이 역경과 싸워가며 꿈을 이루려고 하는 30대 여성의 성공기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줄곧 왈가닥 아가씨 캐릭터를 유지하던 그가 직장인 여성으로 성숙한 매력을 드러내면서 시청률 15% 이상을 기록했다. 18부작이었던 ‘동안미녀’는 장나라의 중국 활동 스케줄까지 미루며 2회 연장을 결정해 20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상대역이었던 배우 최다니엘과는 2013년 KBS2 드라마 ‘학교 2013’에서 재회해 연기 호흡을 맞췄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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