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 1주일 이상 쉼 없이 비행
중간기착지 새만금 방조제 건설 후
새 90% 사라져… 남은 습지 보존을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나는 새. 일생 동안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를 나는 새. 매년 시베리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까지 1만㎞가 넘는 경이로운 비행을 하는 위대한 순례자는 바로 도요새다. 이 작은 새들은 1주일 이상 멈추지 않고 비행해 체중의 절반이 줄어든다.
험난한 여정 중에 이들이 체력을 보충하는 유일한 중간 기착지가 바로 한반도의 서해안 갯벌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갯벌 중 하나인 새만금은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청다리도요, 중부리도요, 큰뒷부리도요 등 수많은 도요새들의 중요한 서식지였다. 그러나 방조제 건설로 갯벌이 사라지면서 그 많던 도요새들도 사라졌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 방조제 건설 전과 후의 변화상을 14년째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도요새의 90% 이상이 사라졌다. 물새팀장 오동필씨는 옥구염전을 휘감던 수만 마리 붉은어깨도요의 아름다운 군무를 잊지 못해 가슴 아파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직 새만금을 찾아오는 도요새들이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과거 갯벌의 경사면을 그대로 간직한 원형지가 새만금에 아직 일부 남아있다. 그 면적이 어림잡아 약 66㎢(2,000만평) 이상 된다. 이전의 온전했던 갯벌에 비하면 손바닥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라도 있어서 도요새들이 오고 있다. 마지막 원형습지를 보존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해수가 흐르게 해서 이곳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새만금갯벌여장군’ 장승을 해창 갯벌에 세웠다. 장승을 세우며 갯벌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일으켜 세웠다. 해창 갯벌은 부안 지역의 새만금 갯벌을 일컫는다. 2006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후 말라 버린 해창 갯벌에 다양한 얼굴과 이름을 가진 장승 수십 개가 섰다. ‘망둥 장군’, ‘꽃게 장군’, ‘지역공동체지킴이 장군’, ‘어민생존 장군’.
2002년 이곳을 찾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오이 원주민들이 세운 장승도 있다. 도요새가 자신들의 형제라고 믿는 마오이 부족은 새만금 갯벌의 상실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도요새를 기다리며 한국을 어떤 심경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장승에 노란 리본들이 달린 것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새만금 갯벌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리본이다. 새만금과 세월호. 생명 알기를 우습게 아는 구조가 낳은 다르지만 같은 참사.
군사정권 때 졸속으로 시작된 새만금 사업은 적폐이자 재앙이다. 잘못된 길이라면 돌아가야 마땅하다. 지금 새만금을 찾는 적은 수의 도요새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를 외치는 생존자들과 같다. 이들에게 남은 손바닥만한 습지마저 빼앗는다면 한국사회는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에서 도요새 깃털을 주웠다. 살려달라는 절규, 다음은 인간 차례라는 경고 같기만 하다. 지금 새만금에 세상의 마지막 도요새들이 있다.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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