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살생부
마강래 지음
개마고원 발행ㆍ248쪽ㆍ1만4,000원
스스로 올바르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울 연남동이니 해방촌 등에서 일어난다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분노한다. 그런데 정작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어서 빨리 집을 팔아 버리고 그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주목받는 ‘힙하고 트렌디한 핫 플레이스’(라고 쓰고 젊은이들이 인증샷 찍으면서 밤새 술 마시고 노는 곳이라 읽는다)에 사는 원주민들은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문화적 이질감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 재생을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은 막아야 한다?
글쎄. 저자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이 주로 세입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들어 “주거지 재생이 아니라 상업적 재생에 불과하다”고 못 박는다.
도덕적이며 올바른 젊은 중산층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분노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난다. “아이를 낳다가 숨지는 산모의 비율(모성사망비)도 매우 높은데, 출생아 10만명당 11.5명 정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6.4명의 2배나 된다. 특히 지방에서는 이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 절반이지만, 제주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 산부인과가, 분만실이, 의사가 없어서다. 여기에 대놓으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래도 돈이 도는 도시에서나 나올 배부른 소리지만, 이에 대한 분노는 찾기 쉽지 않다. 교육,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우린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와 무관한 대도시의 노마드 힙스터들이니까.
‘지방도시 살생부’는 일종의 ‘죽어야 산다’론인데, 모두가 ‘예스’를 외칠 때 홀로 ‘노’를 외친다는 점에서 한번 들여다볼 만한책이다. 제목 보고 ‘어라 애써 살리려는 노력은 죄다 쓸데없는 것이고, 그럼 다 망하게 내버려 두자는 건가?’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저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도심 재생 사업의 기본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로, 체육관, 공연장 같은 거대 인프라를 쿵쾅쿵쾅 새로 짓고, 우리 지역에는 돈 벌어먹고 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사실상 자인하는 ‘역사’ ‘문화’ ‘관광’ 구호를 내세우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업체를 지역에 유치하고, 거대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기존 방식으로는 지방 중소도시를 살려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매년 10조원대 자금을 100개 동네에 투입해서 임기 5년간 50조원을 500개 구도심에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큰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나면 지방은 지방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그 뒷감당을 떠안아야 한다. 그때도 우리 서울의 노마드 힙스터들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만큼이나 분노하고 공감해 줄까.
저자의 대안은 이렇다. 차라리 중소도시의 쇠퇴를 현실로 받아들이자, 대신 지방도시 지원방안으로 도심을 옹골차게 채워 나가는 압축도시 전략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 일러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적정 규모(right sizing), 스마트 축소(smart decline) 전략이라 부른다.
도심에 주요 시설을 집중시켜 되도록이면 주민들을 모여 살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기반시설, 공공서비스 등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강제로 할 수 없으니, 외곽에 사는 이들을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배달망을 확대해야 한다. 빈집은 빨리빨리 부수고 새로운 주택개발을 제한하고, 대기업 유치 같은 폼 나는 대형 프로젝트보다 자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특색 있는 제조업을 찾아야 한다.
사례도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거주지역 집중을 위해 지정된 지역 이외에는 공공서비스지원을 확대하지 않는 방안을 택했다. 파산 도시라 급하게 쓴 방책이다 보니 너무 강압적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 도야마시는 거주촉진지구를 설정, 지구 안으로 들어올 경우 이사 비용, 리모델링 비용 등 온갖 비용을 지원해 준다. 몰락해 가던 일본 후쿠이현의 중소도시 부활 사례를 취재한 ‘이토록 멋진 마을’(황소자리)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일본은 후쿠이현 사례를 따라 이미 106개 지자제가 스마트 축소 전략을 짜 뒀으며, 이에 동참하는 지자체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빽빽해져야 스스로 치유할 힘도 생긴다. 그리고 밀도가 높아진 곳에 해당 중소도시만의 특색을 가꿔 나가야 한다.” 저자의 메시지다. 그에 앞선 건 물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태성 기자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