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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 "아베, 정치 사유화 심각" 전통야권 지지층 위기감 속 결집

입력
2017.10.19 16:1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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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ㆍ공명 연립여당 300석 넘는 압승 예상

일본 중의원선거(22일)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뒤 첫 주말인 지난 14일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열린 입헌민주당의 거리유세에서 에다노 유키오(가운데) 대표와 의원과 간 나오토(오른쪽) 전총리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일본 중의원선거(22일)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뒤 첫 주말인 지난 14일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열린 입헌민주당의 거리유세에서 에다노 유키오(가운데) 대표와 의원과 간 나오토(오른쪽) 전총리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강한 사람을 더 키워주면 사회가 풍요로워진다고 아베노믹스가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입니다. 강한 자만 배를 불려 주면 격차가 더 벌어질 뿐입니다. 중산층이 붕괴되는 일본의 모습이 지금 어떻습니까. 아이들을 안심하고 낳을 수 없는 사회, 위에서 깔보며 내려다보는 정치까지 모두 바꿉시다!”

입헌민주당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의 연설에 3,000여 청중이 “간바레(힘내라) 민주당!”을 외치며 열광했다. 좀처럼 느끼기 힘든 비장한 풍경이다. 22일 시행되는 일본 중의원 총선의 공식 선거전 첫 주말인 14일 낮 12시.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 거리유세 열기는 예상을 초월했다. 에다노 대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엔 결기마저 느껴졌다. 이른바 전통야권 지지층의 ‘위기감’이다. 우익인사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東京都)지사 측 신당(희망의 당)이 등장해 이념지형이 보수우위로 더욱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입헌민주당은 제1야당인 민진당이 희망의 당에 집단 합류해 해체수순으로 가자 리버럴계(진보진영)의 명맥을 잇기 위해 태어난 정당이다.

“국민의 권력으로 평화헌법을 고치려 한다”

에다노 대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민주당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의 관방장관이었다. 정부에 쏟아진 비난과는 별도로 잠을 못 자 초췌한 얼굴로 분투하던 그는 진영을 막론하고 당시 국민 신뢰를 쌓은 정치인이다. 그는 이날 “일본이 블랙기업(직원 혹사기업)에 의한 과로사가 끊이지 않고,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개헌을 밀어붙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향해 “정치의 사유화가 심각하다. 헌법을 통해 국민이 빌려준 권력으로는 헌법을 지키는 게 도리 아니냐”며 “우리가 입헌(立憲)이란 말을 내걸어야 할 만큼 일본이 전전(戰前)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청중 가운데에는 장년층이 가장 많았다. 일본에선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가 아베 정권의 핵심지지층이다. ‘헌법 9조를 지키자’고 쓴 종이를 들고 있던 하마다 요시히코(濱田宜彦ㆍ70)씨는 “아베 정권과 고이케 신당의 헌법개정을 막을 세력이 너무 축소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북한 미사일 핑계를 대고 평화헌법 9조(전력보유 금지)를 고치면 결국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전쟁이 나면 적군과 아군 관계없이 모두가 끝이다”고 외쳤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자민ㆍ공명 연립여당이 초기 예상과 달리 총 465석중 개헌발의가 가능한 3분의 2(310석)를 넘겨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북한발 안보위기에 따른 ‘국난돌파 해산’이라며 지난달 28일 중의원 해산을 강행할 때만 해도 총리퇴진 기준을 연립여당의 과반확보로 내걸 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고이케 신당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이케 지사가 중의원 출마를 포기, 총리후보로 나서지 않으면서 동력이 떨어진 데다 야권이 분열되면서 이젠 자민당이 어부지리를 챙기는 형국이 됐다.

일본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여성 총리 도전자인 노다 세이코 행정장관이 지난 14일 도쿄 오카치마치(御徒町)역에서 열린 지원유세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일본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여성 총리 도전자인 노다 세이코 행정장관이 지난 14일 도쿄 오카치마치(御徒町)역에서 열린 지원유세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북한정세 복잡하니 여당 찍어달라!”

오후 3시 이번엔 자민당의 도쿄 오카치마치(御徒町)역 유세장이다. 지원 연사는 최초의 여성 총리에 도전한다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장관이다. ‘사학 스캔들’로 정권붕괴 위기에 몰렸던 아베 총리가 지난 8월 민심 수습용 개각에서 핵심카드로 활용한 당내 비판세력의 대표 인물이다. 유세장에선 50여명이 ‘사학 스캔들 은폐 해산’이라고 쓰인 유인물을 뿌리는 등 어수선했다. 노다 장관은 “자민당이 제대로 해왔는지 의문도 많지만 복잡한 북한정세를 생각해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 지역에 출마한 젊은 후보와의 개인적 인연을 설명하면서 집권당의 ‘반성’을 언급하는 애매한 어조다.

“아베 총리의 임기나 지지율에만 매달렸다는 점에서 자민당은 반성합니다. 나는 6살 장애아이를 키우는 한 명의 엄마입니다. 아베 정부는 여성활약사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일본을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로 개인의 삶이 불행해진다면 일본은 선진국이 아닙니다. 육아 세대의 젊은 정치인을 국회에 보냅시다.” 노다 장관은 “나는 아베 총리가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며 “매우 어려운 선거지만 나를 믿고 자민당을 밀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의 자민당 지지자들은 고이케 지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30대 여성은 “경제는 자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맡아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원인 나카무라 테루히코(中村輝彦ㆍ45)씨는 “북한과 미국의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일본의 정권이 바뀌면 위험하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아베 총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쓰키지시장(도쿄 최대 수산시장)의 상인들이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도요스(豊洲)로 이전 문제는 지지부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며 “준비되지 않은 고이케 지사는 총리감이 아니다”고 도쿄 행정을 비판했다.

도쿄인근 사이타마(埼玉)현 센겐다이역에서 지난 14일 오후에 열린 희망의당 거리유세에서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 참의원이 이 지역 후보에 표를 몰아 달라고 연설하고 있다. 박석원 특파원
도쿄인근 사이타마(埼玉)현 센겐다이역에서 지난 14일 오후에 열린 희망의당 거리유세에서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 참의원이 이 지역 후보에 표를 몰아 달라고 연설하고 있다. 박석원 특파원

고이케 도쿄지사, ‘배제’의 아이콘으로 추락

고이케 도쿄도지사의 희망의당 측 유세장은 예상보다 위축된 분위기가 확연했다. 우익정체성이 부각되면서 아베 정권과의 차별성이 미약해진데다, 도쿄 외 지방조직이 취약한 탓이다. 이날 오후 6시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현 센겐다이역 희망의당 유세 현장엔 청중이 30여명도 모이지 않았다. 이 지역 현지사를 지낸 마쓰자와 시게후미(松澤成文) 참의원이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지금 어떻냐, 절망적이지 않냐”면서 “젊은 의원들은 불륜과 폭행, 막말로 당을 어지럽혔다. 새로운 보수정당인 희망의당은 깨끗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뭐든지 반대만 하는 민주당도 안된다”며 “아베 정권은 행정개혁이나 의원 보수삭감도 안하면서 소비세를 올려 국민에게 부담시키려 한다. 절대 속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증세 반대와 의원보수 삭감은 이 당의 공약이다.

연설을 듣던 고바야시 노리오(小林憲男ㆍ73)씨는 “이번엔 새로운 당에 기대하고 싶다”며 “아베 총리쪽은 뒤가 좀 구린 것 같아 그만 지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이케 지사쪽엔 새 후보들이 모이고 나라의 재정낭비도 개혁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40대 익명의 남성은 고이케 지사의 인기가 급감했다며 “민진당 출신 인사들에 대해 안보관을 선별해 배제하겠다는 말을 해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이지메(왕따)를 하는 당사자로 비쳐졌다”고 설명했다. 50대 여성 엔도 쿄코(遠藤恭子)씨는 “여성인 고이케 지사를 응원했지만 개헌에 찬성해 거부감이 생겼다”며 “개헌이 필요해도 9조는 지켜야 한다. 자민당이 압승한다는데 나는 아직 결정 안 했다”고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지난 14일 첫 주말 낮 12시,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지난 14일 열린 입헌민주당 거리유세장에 시민단체 회원인 요시히코(濱田宜彦)씨가 '헌법9조를 지키자'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이나 고이케 신당의 헌법개정 시도를 막지 못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지난 14일 첫 주말 낮 12시,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지난 14일 열린 입헌민주당 거리유세장에 시민단체 회원인 요시히코(濱田宜彦)씨가 '헌법9조를 지키자'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이나 고이케 신당의 헌법개정 시도를 막지 못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일본 중의원선거(22일)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뒤 첫 주말인 지난 14일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열린 입헌민주당의 거리유세를 시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일본 중의원선거(22일)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뒤 첫 주말인 지난 14일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역에서 열린 입헌민주당의 거리유세를 시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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