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위원 사상 검증 정황
어린이 만화에도 ‘좌편향’ 딱지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시험에서 ‘물고문’ 등 표현이 나온 근ㆍ현대사 일부 문항을 ‘좌편향 문제’로 규정, 반대 성향의 출제위원들을 솎아내는 대책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정황이 확인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육 개입 의지는 곳곳에서 표출됐다.
1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2014년 2월 7일자 수석비서관회의자료를 보면, 교육문화수석실은 ‘한국사 시험 이념편향성 해소방안’을 냈다. ‘대외비’라 적힌 해당 문건에는 ‘공무원 채용시험 등에서 필수과목으로 채택 중인 한국사 시험 일부 근ㆍ현대사 문항에서 이념편향 문제가 확인’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 아래에는 ‘지문에 제시된 사료가 물고문 등 지나치게 부정적 사건들로 구성’이라며 ‘좌편향’ 문제로 지목한 이유를 들었다. 구체적 사건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로 일부 나온 적 있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으로 추정된다. 교문수석실은 대책으로 ▦시험출제위원 사전 검증 강화 ▦이념편향 위원 제외 ▦출제 문항에 대한 이념 편향성 검증 강화(교육부, 안행부 협업)를 제시했다.
정무수석실도 대책을 내놨다. ‘공무원시험정책자문위를 구성해 가이드라인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 시험위원 풀(266명) 검증’ 대목에 비춰 출제위원의 사상 검증 작업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개연성이 크다. 같은 날 국정기획수석실에서 작성한 ‘대통령 서면 보고’에는 ‘교문ㆍ정무수석이 한국사 과목 이념 편향성 해소방안을 보고했다. 한국사 출제위원을 전수 조사해 이념 편향된 위원을 배제하고 객관적 문제가 출제되도록 종합대책을 강구해 VIP께 보고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로 대통령비서실 차원의 대응을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어린이 역사만화도 문제 삼았다. 2015년 11월 18일자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문건을 보면,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은 어린이 역사교양도서 좌편향을 문제 삼아 ‘부모들이 심각성을 하루 빨리 인식하도록 여당에 관련 자료를 주는 등 신속히 조치하라’고 교문수석에게 주문했다. 특히 어린이용 위인전집에 민감했다. 같은 달 23일 이 전 실장은 “위인 선정의 좌편향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전태일, 체 게바라, 레닌, 호찌민, 모택동 등이 위인으로 소개’됐다고 이유를 들었다. 이런 도서가 출판되도록 놔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사항도 있었다. 이날 회의에선 ‘국정교과서 집필진 미공개의 불가피성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고 명단 보안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는 비서실장 주문도 있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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