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프 국가 선포 3년9개월 만에
모술·락까 등 대도시 거점 상실
시리아 동쪽 끝서 최후 저항 준비
무주공산 폐허된 IS 점령지 재건
세력 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에
각국은 자생적 테러 급성장 우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테러 양성소’를 차려 놓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시리아 락까에서 결국 패퇴했다. 올 7월 최대 자금줄인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 모술에 이어 수도 역할을 해 온 양대 거점 락까에서 쫓겨나면서 IS의 전쟁은 사실상 끝내기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S가 3년 9개월간 뿌려 놓은 극단주의의 씨앗 탓에 영토 손실이 테러리즘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전망이 많다. 무주공산이 된 IS의 빈자리를 두고 새로운 주도권 싸움이 불거질 조짐도 여전하다.
1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ㆍ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은 전날 시리아 중북부 도시 락까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이미 사전 협상을 통해 IS 조직원ㆍ가족 등 3,000여명이 철수한 터라 SDF는 별다른 유혈 충돌 없이 락까의 통제권을 회복했다.
락까 상실이 IS 위상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IS는 2014년 1월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칼리프(이슬람 공동체 최고 권위자) 국가’를 선언했다. 자체 화폐 발행은 물론, 금융 교육 보건 등 주권 국가를 본떠 각 분야에 정부 조직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하는 비무슬림 처형, 서방 인질 공개 참수, 소수민족 야지디족 학살 등 차원이 다른 만행을 저질러 국제사회를 경악케 했다.
락까는 ‘글로벌 테러’의 심장부이기도 했다. IS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 온라인 선전ㆍ선동에 넘어간 젊은 무슬림들을 불러 들여 훈련시킨 뒤 숙련된 지하드(성전) 전사로 만들었다. IS에 합류하기 위해 락까로 넘어간 외국인 전투원이 1만5,000명에 달한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가 나올 정도였다. 미 CNN방송은 “락까를 잃으면서 IS는 더 이상 대도시 거점을 갖지 않게 됐다”며 “칼리프 통치 종식에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IS의 물리적 기반 자체가 완전히 괴멸된 것은 아니다. IS 수뇌부는 락까 철수에 앞서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형성된 수니파 장악 지역, 알부카말(시리아)과 알카임(이라크) 등에 똬리를 틀고 최후 저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IS 우두머리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도 이 곳 어딘가에 은신 중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IS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연대 조직도 건재하다. 영국 BBC방송은 “2015년 3월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충성을 맹세하고 중동ㆍ아프리카에 11개 지부 형태를 둘 만큼 IS의 촉수는 깊이 퍼져 있다”고 진단했다.
더 큰 문제는 IS가 그간 전 세계에 퍼뜨린 ‘테러 유전자’이다. IS 교리에 경도된 이들이 ‘자생적 테러리스트’로 전환한 징후는 여럿 나타나고 있다. 앤드류 파커 영국 국내정보국(MI5) 국장은 이날 “더 많은 테러 위험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며 “현재 극단주의 활동에 연루된 영국인이 3,0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7개월 사이 다섯 차례 테러를 겪은 영국은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IS 가담자가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IS 2인자 아부 무함마드 알아드나니는 지난해 5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하기 석달 전 서방세력이 숨통을 조여오자 공식 성명을 통해 “진정한 패배는 의지 상실”이라며 개별 투쟁으로 방향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BBC에 따르면 IS 등장 이후 29개국에서 최소 150건의 테러가 IS에 의해 직접 실행되거나 영향을 받았으며, 2,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IS의 패퇴는 시리아 정세에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락까는 4개월 동안 계속된 시가전으로 80%가 파괴되고 27만명이 IS 압제를 피해 탈출하는 등 도시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재건 비용과 정국 주도권을 놓고 각 세력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은 일단 쿠르드족이 주축이 된 SDF 민간기구(락까시민위원회)가 도시를 다스려야 한다는 입장이나 러시아ㆍ이란이 지지하는 시리아 정부 역시 락까 지배권 회복을 공언한 상태여서 또 다른 충돌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로이터통신은 “시리아에서 IS의 부재는 미국이 주도하는 광범위한 투쟁의 서막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IS는 내년 6~7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겨냥해 테러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IS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공격의 의미가 담긴 동영상 캡처 사진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복면한 IS 대원이 소총을 든 채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아레나 월드컵 경기장과 트로피를 배경으로 위협을 가하는 장면과 함께, IS 상징 문구와 폭탄에 새겨진 합성 그림 등도 등장한다. 다만 이 선전영상은 IS가 락까를 SDF에 함락당하기 직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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