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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재벌 저택 공사비리

입력
2017.10.18 16: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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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인 유홍준씨가 호화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비판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문화재청장에 발탁된 뒤, 2007년 초 업무계획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그는 “상류층의 문화적 향유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고쳐야 합니다. 세금 많이 내고 호화주택이나 별장을 지으면 그게 결국은 건축 문화유산으로 남습니다. 장려해야 할 일이지요”라고 했다. 그는 문화재로 남겨진 옛 상류층 건축물의 대표적 사례로 전남 담양의 소쇄원 등을 들기도 했다.

▦ 유별난 문화재 애호가다운 발상이라고 여기면서도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문화재를 남기기 위해서라면 수십수백 년 백성들 고혈을 짜내 만리장성을 쌓는 것도 장려해야 한다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친 주택 호사는 상류 문화로 존중받기보다는 대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조선왕조 때만 해도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주변 민가 10채를 소개시키고 호화 저택 공사를 벌인 일부터 시작해 수많은 왕족과 권세가들이 입방아에 올랐다.

▦ 주택 호사를 제한한 규범도 있었다. 실록에는 세종 13년(1431년) 1월 왕이 예조에 내린 지시가 기록되어 있다. 대군은 60칸, 왕의 형제, 자녀 등은 50칸, 2품 이상은 40칸, 3품 이하는 30칸, 서민은 10칸이 넘는 집을 짓지 못하도록 했다. 다소 억지스런 신분적 발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달리 보면 사치를 경계하여 절제하고 삼가는 사회적 기풍을 세우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지나친 호화주택에 대한 반감 역시 오랜 과거의 금기가 아직은 사회의식의 깊은 곳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 요즘 일부 재벌 총수들의 호화저택이 새삼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서울 평창동 자택은 인테리어 공사비로만 7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또 서울 한남동에 모여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 저택들에도 리모델링비 등으로만 수십 억원이 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회삿돈으로 그 공사비를 충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점이다. ‘문화적 향유’를 하면서도 하필 회사 공금을 갖다 쓴 게 동티가 난 셈이다. 여전히 구멍가게 주인 수준인 오너 일가의 사고방식이 안쓰럽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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