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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람중심 경영이다] 정년 70세ㆍ연 140일 휴가 ‘샐러리맨의 천국’

입력
2017.10.17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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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몫 줄여 사원 임금 업계 최고

‘항상 생각하라’ 경영철학 강조

사원 아이디어 年 2만건… 특허 3000개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이 "직원들은 말이 아니다. 채찍은 필요 없고 당근만 필요하다"며 선대부터 내려온 경영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미라이공업의 야마다 마사히로 사장이 "직원들은 말이 아니다. 채찍은 필요 없고 당근만 필요하다"며 선대부터 내려온 경영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중소기업 ‘미라이(未來)공업’은 일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근무하고 싶어하는 ‘샐러리맨의 천국’으로 불린다. 도쿄(東京)에서 신칸센(新幹線)으로 2시간 거리 기후(岐阜)현 오가키(大垣)시의 건축용 전기부품 제조회사다.

직원 850명인 이 회사엔 잔업이 없고 휴일근무도 없으며 비정규직은 물론 정리해고도 없다. 정년이 70세인 데다 휴가는 연간 140일. 육아휴직은 3년이고, 5년마다 단체로 해외여행을 간다. 하지만 올해(2017년 3월결산) 매출은 336억엔(3,360억원), 영업이익률은 8%에 달한다. ‘꿈의 직장’으로 알려진 미라이공업의 실체를 확인하러 지난 10일 현지를 방문했다.

오후 4시 30분, 공장에서 전기스위치박스 조립작업을 하던 아사이 게이지(淺中敬二ㆍ68)씨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5분만 지나면 무조건 퇴근합니다. 22세 때 입사해 지금까지 동료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불만은 거의 없지요.”

4시 45분이 되자 ‘딩동댕’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렸다. 회사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를 물으니 “다른 직장처럼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데다 업무 실적과 임금도 별로 연동되지 않는다”며 “하루 작업량을 스스로 결정해 무리하지 않아도 되니 당연히 안전사고도 없다”고 말했다.

“잔업이 회사 이익을 갉아 먹는다.”

야마다 마사히로(山田雅裕ㆍ53) 사장은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山田昭男ㆍ1931~2014) 전 사장의 장남이다. 선대로부터 이어온 종신고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익이나 매출만 중시하는 대기업들과 달리 일본의 지방 기업들은 아직 종신고용제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 맥도날드 등 일부 대기업도 실력주의나 성과주의가 일본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다시 연공서열제로 돌아서고 있다.

야마다 사장은 잔업을 금지한 이유에 대해 “낮에 꾸벅꾸벅 졸면서 오후 5시쯤 ‘아,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일 좀 하자’는 식은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며 “근무시간 집중도를 높이려고 점심시간도 1시간 내로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잔업이 생길수록 회사 이익은 줄어든다”며 “1시간 잔업 해서 제품 1,000개를 만들었다고 가정하면, 잔업수당이 나가고 컴퓨터나 설비 전기료도 발생하니 회사이익은 오히려 줄어드는 셈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잔업은 회사 이익을 갉아먹는 암적 존재”라고 강조했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이 회사 근무시간은 당초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그러나 여성 직원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데려올 시간이 촉박하고, 퇴근 후 저녁 식사 준비 시간도 부족하다는 고충을 내놓자, 오전 8시 30분~오후 4시 45분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인터넷주문 처리 부서 나와타 유카리(49ㆍ여)씨는 “육아 부담이 큰 여성 직원들에겐 적절한 출퇴근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27년간 다녔는데, 사원요구가 신속하게 경영진까지 전달되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스위치 박스 조립작업을 하는 아사이 게이지(68)씨는 "작업실적이나 월급, 해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 회사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전기스위치 박스 조립작업을 하는 아사이 게이지(68)씨는 "작업실적이나 월급, 해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 회사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영업능력보다 후배직원 키우는 능력 우대

이 회사는 인센티브에 기반을 둔 성과주의도 없다. 개인의 적성에 주목해 인력배치를 적재적소에 하는 방식의 인사관리가 있을 뿐이다. 야마다 사장은 “영업 능력이 뛰어나 회사매출을 올리는 직원은 당연히 우대된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 부하 직원을 키우는 능력은 떨어진다면, 우리 회사는 가장 문제가 있는 직원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상사가 후배직원에겐 제일 중요하다”며 “유능한 직원 한 사람으로서의 능력보다 상사로서 하급자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교육 능력이 더 중요한 덕목”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기술직 급여체계가 다른 회사와 전혀 다르다. 숙련도가 높으면 더 높은 급여를 주는 체계가 미라이공업에는 없다. 숙련도가 높더라도 부하 직원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기술직에 남긴다. 반면 숙련도가 낮더라도 후배들을 잘 키우면 관리직으로 옮겨가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된다.

자유로운 사풍(社風)이지만 유일하게 강조되는 부분은 “항상 생각하라”는 경영 철학이다. 일하는 분야에서 끊임없이 동기를 자극하라는 것이다. 1965년 창업한 미라이공업은 일본 경제 호황 속에 건축 관련 전기부품을 생산하면서 급성장했는데 여기에는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사원들이 제안하는 아이디어가 1년에 2만4,000건씩 쏟아져 보유하고 있는 특허나 실용신안이 3,000여개가 넘는다. 회사 출입문에는 ‘열지 말고 지나가라’는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문구도 붙어있다. 몇 초라도 생각하게 만든다는 창업주의 기발한 발상의 흔적이 회사 곳곳에 남아있다.

미라이공업 곳곳에는 "항상 생각하라"는 창업주 고 야마다 아키오씨의 어록이 게시돼 있다. 직원들이 직접 내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신상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미라이공업 곳곳에는 "항상 생각하라"는 창업주 고 야마다 아키오씨의 어록이 게시돼 있다. 직원들이 직접 내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신상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사원 월급 많이, 사장 몫 축소가 창업주 자부심”

근무 조건이 좋고 승진 걱정도 안 하는 건 물론이고 임금수준도 동종 업계 최고다. 어떻게 유지될까. 야마다 사장은 “한국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장인 내가 급료를 거의 안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 평균 연봉은 610만엔(약 6,100만원)으로 일본 평균 연봉 420만엔(약 4,200만원ㆍ50명 이상 기준)보다 높지만, 내 월급은 100만엔(약 1,000만원ㆍ연봉 1억2,000만원)으로 다른 회사 사장보다 턱없이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몫을 줄이고 사원 수입을 늘린다는 게 선대 창업주의 프라이드였다”며 “한때 공장 생산부장 임금이 회사 전체에서 가장 높았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낭떠러지에 처했을 때 사원들의 사기가 꺾이면 끝이지만 사원들이 열심히 일해주면 위기탈출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오기 위해 인근 기후하시마(岐阜羽島) 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더니, 택시 기사도 미라이공업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는 “매년 취업 시기가 되면 도쿄는 물론 홋카이도(北海道)와 오키나와(沖繩)에서도 면접을 보러 학생들이 몰려온다”며 “작년엔 20명 뽑는데 1,000명이 넘게 지원한 거로 안다”고 말했다.

오가키시(일본 기후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일본 기후현 인구 15만명 소도시 오가키시의 전기부품 제조회사 미라이공업 외부 전경. 잔업이 없고 휴일근무가 없는데다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도 없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일본 기후현 인구 15만명 소도시 오가키시의 전기부품 제조회사 미라이공업 외부 전경. 잔업이 없고 휴일근무가 없는데다 비정규직이나 정리해고도 없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인터넷 주문처리 부서의 나와타 유카리씨는 “휴일이 많고 퇴근시간도 철저히 지켜져 육아부담이 큰 여성직원들에겐 최고의 직장"이라고 말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인터넷 주문처리 부서의 나와타 유카리씨는 “휴일이 많고 퇴근시간도 철저히 지켜져 육아부담이 큰 여성직원들에겐 최고의 직장"이라고 말했다. 오가키시=박석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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