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아~!” “한열아~!”
조금 발음이 어색하긴 했지만, 메조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홀머는 노래 끝 부분에 다다르자 박종철ㆍ이한열 같은, 뜨거웠던 그 시대 민주열사들의 이름을 어머니의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지난 7월 4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된 ‘깊은 탄식 속에서(Aus Tiefer Not)’ 가운데 ‘눈물 비(Tear Rain)’의 한 장면이었다. 바로 이 곡이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무대에 오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마련한 공연이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500주년 기념 무대이라면, 흥겨운 잔칫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깊은 탄식 속에서’라니.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해서 생일을 맞은 것처럼 박수치며 기뻐해야 할까요. 전 오히려 지금 우리가 그 때의 종교개혁 정신에 충실한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깊은 탄식 속에서 고민하고 되물어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16일 김영주 NCCK 총무가 내놓은 대답이다. 김 총무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무대로 이 공연을 끌어 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인 10월 29일이 하필이면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한 첫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다. 김 총무는 “’깊은 탄식 속에서’는 시편 130편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시편 자체가 깊은 고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희망을 함께 노래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며 “이 구조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울림을 갖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이 공연의 의미다. 원래 ‘깊은 탄식 속에서’ 프로젝트는 세계개혁교회연맹(WCRC)의 의뢰로 시작됐다. 독일에서 열리는 총회를 맞아 WCRC는 네덜란드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 코드 마이어링에게 성경의 시편을 응용한 신곡을 만들어 ‘시편 콘서트’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이어링은 희망을 나타내는 곡들은 하인리히 슈츠, 펠릭스 멘델스존 등이 작곡해둔 기존 고전음악에서 3곡을 뽑고, 고난을 나타내는 부분 4곡과 마지막 화합의 곡 1곡은 새롭게 작곡하기로 했다.
한국과 오랜 인연 때문에 한국 역사와 정서뿐 아니라 리듬과 악기에도 능숙했던 마이어링은 ‘17세기 유럽 독일의 30년 전쟁’, ‘19세기 미국의 노예제’, ‘21세기 아프리카 콩고 내전’과 함께 ‘20세기 아시아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을 고난을 나타내는 대상으로 골랐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음악을 당시 국립오페라단장을 맡고 있던 국내 작곡가 이건용에게 의뢰했다. 이건용은 광주민주화운동의 비참함을 노래한 김남주 시인의 ‘학살 1’, 고정희 시인의 ‘학살당한 이의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토대로 15분 길이의 칸타타 ‘눈물비’를 완성시켰다. 또 전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지막 합창곡 ‘할렐루야’도 만들었다. 지난 7월 4일 라이프치히 교회 초연은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WCRC 총회 진행이 좀 어설퍼서 각국 대표단들의 불만이 좀 상당했는데, 이 공연을 보고서는 모두가 열렬하게 박수치면서 다들 만족했으니 공연만큼은 자신 있어요.” 김 총무의 귀뜸이다. 성공회성당은 700석 규모다. 입장료는 없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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