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가들의 ‘사람중심 경영’ 성향은 불행하게도 질과 양적인 측면 모두에서 국제 수준에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신뢰 관계를 형성해 몰입과 공감을 끌어 내는 데는 소극적인 반면 단기적 기업 이익과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세계중소기업학회(ICSB)가 지난해 세계 19개국을 대상으로 ‘기업가 지수’와 ‘사람중심 지수’를 측정한 결과, 한국은 두 지수 사이의 괴리가 미국과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컸다. ‘기업가 지수’는 열정, 비전, 혁신성 등 기업 이익을 창출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지표이고, ‘사람중심 지수’는 직원 공감, 개방ㆍ평등, 윤리, 권한위임 등과 관계된 지표다.
한국은 모두 5개 요소(5점 만점)로 나눠 평가한 ‘기업가 지수’에서 16.2점(총 25점 만점)을 받았으나, ‘사람중심 지수’에서는 12.69점을 받는 데 그쳤다. 두 지수 사이의 괴리는 3.51점에 달했다.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조사에서 1, 2위를 놓치지 않는 싱가포르는 ICSB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두 지수 사이의 괴리가 0.77점에 불과했다. ‘기업가 지수’는 18.54점, ‘사람중심 지수’는 17.77점이었다. 적극적으로 이윤과 효율을 추구하는 것만큼 싱가포르 기업가들은 직원과 종업원에 대한 배려 수준도 높다는 의미다. 사회적 성숙도가 높은 오스트리아와 영국 역시 싱가포르처럼 두 지수가 균일하고 높은 특성을 보였다. 오스트리아는 ‘기업가 지수’는 17.53점, ‘사람중심 지수’는 17.31점으로 평가됐고 영국도 두 지수(기업가 16.51점ㆍ사람 15.53점)의 괴리가 크지 않았다.
반면 유럽 선진국보다 시장원리ㆍ자유경쟁 원칙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기업가 지수’는 18.9점으로 19개국 가운데 최고였지만 ‘사람중심 지수’(14.95점)는 중상위권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두 지수 격차가 3.95점으로 조사대상 중에서 가장 컸다.
일본은 유일하게 ‘기업가 지수’(14.04점)보다 ‘사람중심 지수’(14.06점)이 높게 나타났다.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장기불황을 겪으며 단기 성과보다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여기에 1970, 80년대 일본 경제 황금시대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종신 고용 관행이 저변에 뿌리 깊게 깔려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조철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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