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정이 이란 핵프로그램을 국제사회의 통제 하에 두는 역사적 협정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계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사찰방식과 이른바 ‘돌파 시간’ 논란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방위적 사찰을 허용했지만, 이란이 포함된 중재기구의 협의를 거치도록 한 점이 실효성 논란을 낳았다. 이란이 ‘자발적 사찰’을 주장하는 근거다. 우라늄 농축과 원심분리기 가동 제한을 각각 15년과 10년으로 묶어 그 이후에는 핵무기 제조에 성공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돌파시간을 통제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것도 큰 문제다.
▦ 대선 때부터 이란 핵협정을 “핵무장을 위한 보호막에 불과하다”며 줄곧 반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이란 핵협정 ‘불인증’ 카드를 꺼냈다. 당장 협정을 파기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이란 제재를 복원하겠다는 경고다. 이란은 물론이고,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이 한 목소리로 트럼프의 조치를 강력 비판해 이대로라면 협정은 파기 수순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유엔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를 ‘불량 국가’로 지목할 때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조치에 강한 반발이 나오는 것은 그나마 이란 핵무장을 제어할 아무런 수단이 없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북핵 문제에도 잘못된 신호를 줘 협상을 통한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 불인증에 반대한 것은 이란마저 핵무장 대열에 가세한다면 미국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신뢰가 훼손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 트럼프의 카드가 북핵에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이란 핵협정처럼 불완전하고 정치적으로 타협된 협상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뜻을 내포한다. 북핵 문제에서 동결이나 제한된 핵 용인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김정은에게 경고한 셈이다.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를 조언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북핵에는 이란 핵협정처럼 핵개발의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거부가 김정은의 도발을 더욱 부추길지, 아니면 미국의 대북 레버리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