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신태용(48) 축구대표팀 감독과 김호곤(66)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이 공항에 나온 일부 팬들의 반대 시위에 예정됐던 인터뷰도 못한 채 부리나케 공항을 빠져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 2일 유럽 원정길에 올랐던 신 감독은 두 차례 원정 평가전을 마친 뒤 김호곤 위원장과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새로 뽑을 전술 및 피지컬 코치들을 면접했다. 이후 다시 러시아로 이동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년 러시아월드컵 베이스캠프 후보 두 곳을 돌아본 뒤 15일 오전 귀국했다.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은 귀국 직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에게 유럽 2연전 성과와 베이스캠프 답사 내용 등을 설명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레 계획을 바꿔야 했다. 거스 히딩크(71ㆍ네덜란드) 전 감독의 부임설을 둘러싼 팬들의 시위 때문이다.
자신들을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축사국)’ 회원이라고 밝힌 5명은 ‘한국 축구 사망했다’ ‘문체부는 축협비리 조사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축구협회 집행부 전원 사퇴와 히딩크 감독의 영입, 신 감독과 김 위원장의 퇴진, 문화체육관광부의 축구협회 감사 등을 요구했다. 이에 축구협회는 신 감독 일행을 다른 출구로 공항을 빠져나가게 하고 이날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신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 감독은 “제가 감독을 맡고 9~10월에 치른 경기 결과에 대해 팬들이 실망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11월부터는 월드컵 무대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을 뽑아서 더 좋은 팀으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지난 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대표팀에 자책골 두 방을 포함해 2-4로 패한 데 이어 10일 스위스 빌/비엔느에서는 2군으로 나선 모로코에 1-3으로 완패해 최악의 경기라는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신 감독은 “원정 2연전에서 팬들이 실망할 만한 경기를 했다. 그래서 마음 편안하게 돌아오지 못했다”며 “공항에서 항의 시위를 보고 저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위에 나선 분들도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선 것인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코치 면접에 대해서는 “여러 후보를 만나서 미팅하고 진취적 얘기도 많이 했다”며 “마음에 상당히 드는 후보들이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 기술위와 상의해서 11월부터 합류할 수 있게 준비 하겠다”고 덧붙였다.
신 감독은 이어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는 팬심을 달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소속 팀에서 경기에 많이 나가면서도 대표팀에서 희생할 수 있는 선수를 발굴해 수비와 공격 전술을 다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호곤 위원장 역시 “유럽 원정 2연전에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국민께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 어떤 비난도 겸허히 받아 들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축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며 “당장의 결과보다는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시련을 통해 대표팀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팬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이해를 구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에 대해 “축구계에 50년 이상 몸을 담아오면서 거짓말 한 적이 없다. 이번 사태로 가족들에게 미안할 정도다”며 “신 감독 역시 나 때문에 생긴 문제로 상당히 고통을 받고 있다. 비난은 저에게 해주고, 신 감독에게는 변함없는 신뢰와 성원을 부탁 한다”고 마무리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