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동포 밀집 가리봉동ㆍ대림동을
조폭동네로 묘사한 영화 잇달아
“사회에 미칠 파장 고민했는지 의문”
#2
국내 외국인 206만명 넘었지만
제3세계 국민ㆍ유색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적 인식은 여전
#3
형사정책연구원 폭력범죄 연구보고서
“외국인 검거 내국인의 절반 수준”
흑인 중 아프리카 흑인이 더 찬밥
“착한 경찰이 나쁜 놈들 때려잡는 거 보면 통쾌하죠. 그런데 그 나쁜 놈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지 보여 주려고 조선족 많은 동네는 더러운 무법 천지로 그리고, 조선족들은 서로 괴롭히고 속이기만 하는 사람들로 다뤄도 되는 겁니까?”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사는 중국 동포 차영수(가명ㆍ59)씨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영화 ‘범죄도시’를 보고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뒤에서 젊은 커플이 “가리봉동이 저렇게 무서운 동네였어?”라고 한 말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가리봉동에 터를 잡고 10년 넘게 살며 그는 늘 ‘가리봉동은 그렇고 그런 동네’ ‘조선족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라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에 시달렸다. 영화는 그런 편견을 대놓고 공식화하는 것 같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 동포랑 말 한 번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뉴스나 영화만 보고 다 그런 줄 알아요. 저는 가리봉동이나 대림동에 한 번 와보라고 했어요. 한국 사회와 중국 동포 사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하지만 수백만 명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과연 그럴 마음이라도 생길까요?”
“가리봉동이 저렇게 무서운 곳이었어?”
지난 4일 개봉한 ‘범죄도시’와, 앞서 8월에 개봉한 ‘청년경찰’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동포들이 뿌리를 내리고 밀집해 살고 있는 대림동, 가리봉동을 주 무대로 다룬 오락 영화다. 각각 272만명(12일 기준)과 560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꽤 성공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중국 동포들은 영화를 단순한 오락으로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절망스럽다’고 호소한다.
“이 동네(대림동) 조선족만 사는데 밤에 칼부림 많이 나요. 여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들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해선 길거리 다니지 마세요.” ‘청년경찰’ 속 택시기사의 대사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없었던 편견이 영화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는 없어도, 편견을 확대 강화하는 것은 틀림 없다. 이런 이유로 지난달 50여개의 중국 동포 관련 단체들은 ‘청년경찰 상영금지 촉구 대림동 중국동포& 지역민 공동대책위원회 및 중국 동포, 다문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한국 영화 바로세우기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 관계자는 “대림동을 칼부림 나는 곳으로 단정지은 것부터 문제다. 더구나 영화가 허구라면서도 대림역 12번 출구를 화면에 담고 대림동만 실제 지명을 쓰고, 다른 모든 지명은 가명을 쓴 것도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이어 영화 ‘황해’ ‘신세계’ ‘청년경찰’ ‘범죄도시’에 이르기까지 중국 동포를 범죄자로만 다루는 대중문화가 크게 늘고 있는데 작가, 감독, 제작자들이 과연 얼마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민했는지 의문입니다.”
영화 ‘범죄도시’는 2004년 가리봉동의 사행성 불법 오락실 바다이야기의 운영권을 두고 중국 동포 조직폭력배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것이 주된 스토리다. 그러나 실제 바다이야기는 한국 조폭의 사건이었다. 강윤성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리얼리티가 생명”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중국 동포에 대한 리얼리티는 관심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바다이야기는 2004년 한국 조폭이 주도했고, 영화에서 모티프로 삼았다는 경찰의 흑사파 검거는 2007년 있었던 별개의 사건”이라며 “중국 동포를 더 악하게 그리려고 사실 관계조차 틀리게 다룬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조병관 변호사는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묘사되고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중국 동포는 우리보다 낮은 존재라는 인식이 굳어져 버릴 가능성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일부 무슬림을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무슬림=테러집단’이라는 고정 관념이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200만명 시대… 소수집단 차별은 여전
중국 동포를 포함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올해 8월 기준 206만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5,000만명의 약 4%에 해당한다. 2007년 100만명 돌파 이후,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날 만큼 양적인 글로벌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국제 결혼이 흔해졌고, 외국인과 섞여 일하는 일터도 많아졌다. 방송에서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 출연자들도 한국 사회 인식의 글로벌화에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선진국, 글로벌 코리아라는 안팎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수 집단에 대한 배제ㆍ차별ㆍ홀대는 여전하다. 한국인 사이에서 외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백인, 서구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에 대해서만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의 노동자나 결혼이주 여성, 무슬림, 흑인은 한국이 부르짖는 ‘세계화’에선 빠져 있다. 약자, 타자, 열등한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이 상당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외국인에 대한 선호가 높지만 흑인 강사는 기피 대상이다. 세종시에서 한 교회가 부설로 운영하는 영어교습 프로그램에 유치원생 아들을 보냈던 박모(42)씨는 “첫 수업에 거구의 흑인 영어강사가 등장한 순간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낯빛이 바뀌더니, 신청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했다. 이후 몇 달 동안 이어진 박씨 아들의 일 대 일 영어교습은 ‘백인 강사로 바꿔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백인 강사로 교체되며 막을 내렸다. 4년 째 한국에서 살며 ‘머드 이데알’이라는 패션 블로그를 운영 중인 미국인 야스미나 피에르(24)씨는 “지하철에 빈 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는다”고 했다. 옆자리 사람들이 일어나서 가버리는 일을 너무 많이 경험한 탓이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반감과 차별은 출신 국가ㆍ인종ㆍ종교ㆍ언어 등에 따라 다차원적으로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흑인 중에서도 아프리카 국가의 흑인은 더 낮은 대우를 받는다. 가나 출신 대학원생 페르디난도(25ㆍ한양대 생명과학 전공)씨는 “가나 유학생들 대부분 한국 교수로부터 흑인이라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 백인 학생에 비해 학점을 낮게 받거나, 수업시간에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우린 흑인이라서 중요하지 않아. 한국은 백인이 더 중요해’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양모(52)씨는 아프리카에서 온 젊은 흑인들이 미군 점퍼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같은 흑인이라도 미군, 미국 출신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잘 대해준다는 겁니다.”
김현숙 숙명여대 다문화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인의 배타적 태도에 대한 이주민 반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선진국은 부유하고 깨끗한 나라, 후진국은 가난하고 더러운 나라라는 고정 관념이 강하고, 후진국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
중국 동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는 소수 중국 동포의 흉악한 강력범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2015년 여론조사전문기관 코리안리서치가 동북아평화연대 의뢰로 20, 30대 한국인 2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중국 동포(조선족)에 대한 차별이 있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87%가 그렇다(아주 심하다 17%, 어느 정도 있다 70%)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 60%가 ‘중국 동포와 관련한 사건들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웬춘 사건 등 잔혹 범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국 동포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43%에 달하는 것도 여기에 맥이 닿는다.
하지만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펴낸 ‘외국인 폭력 범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국적별 인구 10만명당 폭력범죄 검거인원이 중국 동포는 505로 내국인 681보다 오히려 낮았다. 전체 외국인을 대상으로 계산한 지수는 357로 내국인의 55%에 불과했다. 앞의 설문조사에서 다른 차별의 원인으로 꼽힌 ‘말투나 행동이 다르기 때문’(16%), ‘문화가 다르기 때문’(12%),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8%) 등은 오히려 한국인의 인식 속에 근거 없는 편견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중국 선양 출신 유학생 박동찬(22ㆍ연세대 국문과 휴학 중)씨는 이런 근거 빈약한 편견과 차별을 매일같이 겪는다. “외모만 봐서는 한국인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친근하게 다가왔다가 제 억양이 다르다는 걸 알고 표정이 굳어지면서 곧바로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물어요. 그때마다 차별받는 느낌이 강하게 들죠.” 박씨는 중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온, 중도 입국 초등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데, ‘서울말 억양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이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른 억양을 쓰다가 집단 따돌림을 겪은 뒤 충격을 받은 경우가 많거든요.”
중국 동포는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통합연구소가 외국인 노동자 326명을 대상으로 2015년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51.2%가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무엇 때문에 차별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29.4%가 ‘언어 차별’이라고 답했다. 임금 차별(21.9%), 계약기간 등 근로관계 차별(20.9%)보다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 더 잦다. 네팔 출신 우다야 라이(50) 민주노총 이주노조위원장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차별적 대우가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된다고 설명한다. “본국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오는 근로자들이지만 작업현장에서 의사 소통에 한계가 있죠. 한국 동료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위험한 일을 시키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지도 않고,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게 하고는 기숙사비를 떼가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부당한 대우에 항의를 하면 사업주들이 ‘돈 벌려고 와서 한국 말도 못하면서 무슨 노동자 권리를 떠드느냐’고 모멸감을 주고 맙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나고 자라 언어도 국적도 분명 한국인인 아이들조차 혼혈의 외모를 타고났다는 이유로 이방인 대우를 받는다. 8년 전 결혼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A(30)씨는 아이들이 엄마 나라를 비하하는 표현을 듣고는 무슨 뜻이냐고 물어올 때 가장 난감하다고 한다. ‘똥남아’ ‘트남이’ ‘파키벌레’ ‘바퀴스탄’ 등 대부분 동남아 국가와 그 나라 사람들을 낮춰보는 표현이 인터넷 등에서 흔히 접하는 탓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국 국적을 가졌어도 ‘진짜’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출신으로 중학생 아들(14), 초등학생 딸(12)을 둔 40대 여성 B씨 역시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아직도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에게는 ‘다문화 엄마’라고 부르죠,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서 군대 가고 이 나라 국민으로서 살아가려는데 외모 만으로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이 슬픕니다”라고 했다.
김옥녀 서울시립대 강사는 “주류 사회의 태도가 이주 2세대, 3세대의 정체성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들의 정체성 혼란이 심해지면 사회 문제와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독교 반대에 수출산업 할랄단지도 무산
한국에서 가장 편견과 차별의 벽이 높은 것은 아마도 무슬림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조모(49)씨는 올 가을 초등학생 두 자녀를 데리고 말레이시아로 이주할 예정이다. 대학 때 아랍어를 전공하고 이슬람을 공부하다 스스로 무슬림이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아요. 말레이시아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격한 이슬람 교리를 지키기에 한국의 생활환경은 배려가 너무 없다. 학교 급식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일일이 걸러낼 수 없고, 하루 몇 차례의 기도 시간을 용인하는 직장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이슬람을 테러집단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기 어렵다고 조씨는 말한다. “한국에서는 무슬림은 테러집단이라고 몰아세우며 무조건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수출산업이라며 할랄 식품전용단지를 만들려다 전부 무산된 이유가 뭘까요?”
실제로 전라북도는 2015년 할랄식품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며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할랄 식품전용 생산단지 조성 계획을 밝혔다가 1년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됐다. 대구시, 제주도, 강원도 등의 할랄타운 및 할랄파크 조성 계획도 모두 무산됐다.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거셌던 탓이다. 전북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전체 232만m² 중 할랄 식품단지가 들어설 공간은 극히 일부였죠. 그런데 기독교 단체들이 할랄식품단지가 들어서면 이슬람이 한국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거세게 반대했죠. 지난해 4월 총선 때 익산시장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졌는데, 시장 선거ㆍ국회의원 선거 할 것 없이 할랄식품단지 조성이 주요 이슈가 되면서 결국 흐지부지됐어요”라고 말했다.
강원도 할랄단지 조성에 반대하는 나라사랑시민운동은 2015년 12월 강원도청 앞에서 반대집회를 열고 이런 논리를 폈다. “할랄식품은 이맘이 반드시 인증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할랄식품을 학교 급식, 기숙사 단체에 공급하면서 파키스탄에서 이맘이 5,000명이나 들어왔다. 이런 전례에 비춰 우리나라도 할랄제품 인증을 받으려면 이맘이 대거 국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겠느냐.” 테러 세력이 할랄 타운을 통해 국내에 들어올 경우 한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한국이슬람중앙회 측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일축한다. “해외 할랄인증기관에서 보내는 율법 전문가, 식품 전문가 등이 실사 작업 후 본국으로 돌아갈 뿐 이맘을 포함해 수 많은 무슬림이 유입된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입니다. 할랄단지 때문에 대한민국이 무슬림으로 뒤덮인다는 주장을 들으면 답답할 따름입니다.”
김현숙 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이주자의 성, 인종, 출신 민족, 계급 등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그어 자국민인 우리와 이주자인 그들을 분리하려는 정체성이 여전히 강하다”며 “다양한 이주민이 증가하는 현 시점에 선주민과 이주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한국인도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상대방이 있는 문제는 쌍방향적 소통과 해결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상준 기자buttonpr@hankookilbo.com
김주은 인턴기자(고려대 컴퓨터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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