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찰, 조성경위 및 사용처 집중 추궁
‘카드깡’ 수법으로 31억여원 조성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입건된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13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대구지방경찰청에 출두했다.
박 행장은 오전 9시 48분쯤 경찰청 별관 지능범죄수사대 앞에 도착해 비자금 사용처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경찰에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한 뒤 바로 3층 조사실로 향했다.
경찰은 지난달 5일 박 행장과 부장급 간부 5명을 배임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입건했다. 은행 본점 역할을 하는 대구시 북구 침산동 제2본점 등 12곳을 압수수색했다. 수성구 본점은 리모델링 관계로 일부 영업부서만 남아 있다.
경찰은 박 행장 등 6명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그 동안 박 행장을 제외한 5명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박 행장 취임 직후인 2014년 3월부터 지난 7월까지 백화점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판매소에서 수수료(5%)를 공제하고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대구은행은 고객사은품 법인카드로 고객사은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회계처리 한 뒤 실제로는 백화점 측의 협조를 받아 상품권을 매달 6,000만~1억원어치를 건네 받았다.
경찰은 구입한 상품권 규모가 총 33억원에 육박하고, 수수료를 뺀 31억여원을 현금화해 카드사용이 곤란한 곳에서 업무추진비나 개인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비자금 조성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경조사비 등 은행을 위해 납득할 수 있는 곳에 사용했다면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비자금 11억6,000여만원을 조성해 횡령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회장은 1심 무죄, 항소심 유죄, 대법원 무죄취지 판결을 받고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이 전 회장 상고심에서 비자금 중 일부는 개인적 용도가 아닌 회사를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죄취지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박인규 대구은행장은 ‘카드깡’이라는 금융기관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만큼 ‘소명’ 여부에 따라 운명이 엇갈릴 전망이다. 금액이 많지만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은행을 위해 썼다면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일 경우 부적절한 카드깡으로 은행에 손해(수수료 상당액)를 끼친 업무상 배임뿐 아니라 업무상 횡령에 대한 책임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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